
어딘지는 모른다. 어느 강연장인 것도 같은데 사람이 많이 모였다. 지인이 네댓인데 또렷하게 아는 분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윤 대통령은 직장의 상사로 여겨졌다. 승진하려면 그분에게 근무평정을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근무평정은 얼마 전에 끝난 것 같아 미처 이야기도 못 한 게 아쉬웠다. 너는 소원대로 승진해서 정년퇴임까지 하지 않았느냐는 자문자답으로 맘이 가벼웠다.
우리 집이 있는 그림 두 장을 펼쳐놓았다. 윤 대통령과 그 그림을 보면서 대전, 전주에 있는 집이다며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윤 대통령은 좌석이 나랑 오른쪽 첫 번째 줄이다. 내 앞으로 가까이 앉았다. 한참 뒤에 앞자리로 가더니 자기 자리라며 비켜달라고 했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눈을 떠보니 방이 훤하니 새날이었다. 한바탕의 봄 꿈이었다.
4월 4일, 며칠 전부터 디-데이(D-day) 셋, 둘, 하나를 세 온 날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3일, 국회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彈劾訴追)안을 가결한 지 112일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오전 11시에 판결을 내릴 날이다. 그동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온 나라가 민심이 두 갈래로 나뉘어 국가 앞날을 걱정하며 마음으로 시위를 해왔다. 또 거리로 나와 윤 대통령 탄핵의 찬반을 외쳐댔다. 그 고함은 하늘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국민은 정치 불안정으로 나라 안팎의 경제 침체로 이어지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게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판결이 3월 절반을 넘어가자, 어느 쪽으로든지 빨리 이루어져 경제가 회복되길 기도드리곤 했다.
“반만년 동안 이 민족과 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 원하신 대로 판결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래서 빨리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안정되게 하소서.”
판결을 기다리다 지친 국민은 나라를 위한 기도자로서 수를 날마다 더해갔을 성싶다.
나는 나라 걱정만 하지 자랑스러운 애국자는 아니다. 그런데 꿈에 윤 대통령이 나와 대화를 나눈 뒤에 본인 자리를 찾아가 앉는 걸 보았다.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꿈을 해석했다. 이 꿈이 오늘 탄핵 심판과 관계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인용일까, 기각일까? 꿈대로라면 기각이고 꿈과 반대라면 인용이다.
눈이 자꾸 벽시계로만 간다. 텔레비전도 긴장해서인지 정신을 차리고 방송을 하며 11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쯤 앞두고 대문 밖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아내가 뉴스 특보를 전해주었다.
“8 : 0 전원일치로 윤 대통령 파면.”
꿈과 반대로 판결이 난 게 아닌가? 윤 대통령이 자기 자리에 못 앉게 되었다.
국민이 서두른 대로 하루라도 앞당겨 헌법재판소 판결은 났지만, 희비가 엇갈렸다. 환호와 탄식, 기쁨과 실망, 기대와 우려를 안겨주었다. 이제 국민은 판결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야 한다며 말하고 있다. 그렇다. 온 국민이 내 꿈처럼 자기 자리를 찾아가 힘도 모았으면 좋겠다. 나도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말로만 아니라 내 몸으로 조금씩 더 실천하고 싶다.
정석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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