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노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떤 단체인지 모른 채 그저 좋아하는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2004년 8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노조 밖 불안정·소외 노동자 일을 이때 시작한 것이다.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해 말 합격(47회)했다. 노동 운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2005년 3월부턴 비정기 활동을 이어갔다.
대형로펌에서 먼저 일했다. 애초 있으려 한 곳은 아니다. 빚 갚을 돈을 번 뒤 나왔다. 2010년 법무법인 공감에 들어가 노동 사건만 담당했다. 초기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수임료를 받지 않고 일을 하는 변호사 윤지영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다녔다. 3월 출간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에 나온 일화다.
대표 취임 1주년(2월 28일)과 책 이야기를 들으려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다음 날인 4월 5일 인터뷰했다. 직장갑질 119는 4월 4일 “박근혜 탄핵 당시 촛불 광장의 승리는 끝내 일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광장의 열망이 정권 변화를 넘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성명에 관한 질문부터 했다.
-성명 취지는.
“사람들이 광장에 나간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와 우리 일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정치가 일상의 토대라면, 가정, 학교, 직장은 일상의 구체적인 구성 요소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 삶은 암흑에서 헤어날 수 없다. 자유와 권리도 공허한 것이 된다. 박근혜가 탄핵당할 때도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광장 민주주의는 일터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 일터 민주주의의 기본은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자유와 노동권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가면 숨죽였다.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무늬만 프리랜서·자영업자는 늘었다. 고용 불안, 노동 감시가 일상화됐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딱 최저임금이다.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노동자가 너무 많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에게 헌법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과 노동자와 자영업자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노동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차기 정권과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할 노동 과제는.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에게 헌법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법상 근로자이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노동자와 자영업자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노동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가 모든 걸 결정한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근로자 개념도 바꾸고, 노동권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곧 ‘노동자 스스로 싸워 쟁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해 원청 교섭, 초기업별 교섭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의 법체계에서는 이들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없다.”
-진보를 내세운 정권도 노동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는데.
“큰 틀에서 보면 (보수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말고는 비정규직 정책은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법 통과로 상시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이 제도화됐다. 노동계는 상시 업무 정규직 사용을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플랫폼 노동처럼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늘었지만, 일부 사회보험 적용 외에 노동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법 적용 대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됐다.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원청 교섭 등을 위한 제도 개선도 되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노동을 앞세우지만, 노동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 지지자 일각에선 차별금지법이나 노동 과제도 ‘내란 종식’ 뒤로 미루자는 소리가 나오는데.
“당연히 내란 종식은 중요하다. 내란 종식과 차별금지법, 노동 과제 해결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일관되게 한 말이 있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라면 일터 민주주의도 실현할 수 있다. 정치가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직장갑질119 계획은.
“일터 민주주의와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한 일이 많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법 밖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 차별, 괴롭힘, 노동 감시처럼 일터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현실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취임 1주년 소회는. 월급도 100만원인가.
“창립 때부터 일해와 별다른 소회는 없다. 일터 민주주의를 말하는 직장갑질119가 정작 민주적이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6명의 상근 스태프와 200여 명의 자원활동 스태프가 보람과 만족을 느끼며 민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월급도 그대로다(웃음).”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건들을 맡아왔다. 불안정·소외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이유는.
“의뢰인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온갖 피해를 보고,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그 억울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자리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구조 문제다. 소송 당사자는 한 명이어도 승소하면 많은 노동자에게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다른 구제 방법이 없고 승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덤벼들 수밖에 없다. 소송 과정 자체가 의뢰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지더라도 싸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책은 왜 냈나.
“내가 경험하고 고민한 것들을 완전히 까먹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경험한 일은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알아야 할 현실, 고민한 것들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다. 나무에 미안한 짓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저자 소개에 ‘노동인권 변호사’라 적혔는데, 변호사로서의 계획은.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 거창하고 쑥스럽다. 노동변호사가 좋다.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 특별한 계획은 없다. 앞으로도 계속 노동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윤 대표는 책에서 “내가 앞으로도 살아갈 미래에 대한 바람도 단순하지만 간절하다”며 이렇게 썼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