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그대로 받아쓰는 미디어·언론, 문제 심각”

2025-04-12

【 청년일보 】 많은 언론에서 익명을 담보로 하는 커뮤니티의 글들과, 차별과 혐오가 담긴 정치인 등의 말을 ‘보도’라는 명목하에 전달하며 사회적 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생산되는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진보당 정혜경 국회의원실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미디어 속 혐오표현 개선과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11일 오후 국회 제7간담회실에서 개최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정슬아 팀장이 진행을 맡은 이날 토론회는 1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명확한 규제 방안이 존재하지 않아 미디어·언론에서 생산하는 혐오표현이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피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정혜경 진보당 의원과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박고은 한겨레 기자, 성상민 문화평론가, 한희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가 참석했다.

발제자인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혐오표현 조차도 표현의 자유 범주에 해당한다며 이를 제한하려는 ‘차별금지법’을 두고 위헌 혹은 과잉 금지적 법안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며 “이들은, 인간 개인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앞세우며 혐오표현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김 부교수는 혐오표현과 차별금지법은 대립(VS)의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혐오표현 규제를 자유 규제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담론이 혐오표현과 관련한 논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아 부교수는 한국의 혐오표현 공적 규제의 한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혐오표현의 정의가 법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며 “한국에서 혐오표현이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는 형법상 모욕죄,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형법상의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는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된 경우에 한하며, 사실상 혐오 차별의 규제보다는 개인의 명예 등을 보호 법익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모욕의 심각성 등이 기준이 돼 ‘온건해 보이지만 사실상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혹은 심각하게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배제하게 되는’ 사회적 혐오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 김 부교수의 생각이다.

김 부교수는 “현재의 혐오표현 논의는 규제할 수 있는 모욕죄 범주를 사용하기에 모욕적인 말의 범주에서만 작동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다”며 “예를 들어, 현재 여러 연구가 ‘남녀 모욕적 표현’ 혹은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남성의 특징 혹은 여성의 특성을 근거로 하는 모욕적 표현들이 현재 형법상 모욕죄에 포함된다는 인식을 그대로 혐오표현으로 대입해 생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부교수는 혐오표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특정 속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을 분리, 구별, 제한, 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 여기서 특정 속성은 인종, 국가, 민족, 지역, 나이, 장애, 성별, 성적지향, 종교, 직업, 질병 등을 말한다. ‘눈먼 돈’, ‘결정장애’ 같은 표현은 ‘장애’라는 특정 속성이 내재된 혐오표현이다.

◆ “차별금지법, 언론에도 파급 효과 있을 것”

이날 토론회 중에는 이른바 ‘받아쓰는’ 행태의 ‘언론’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2021년 1월,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를 중심으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이 발표된 적이 있다”며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마련해 배포했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먼 이야기’라는 평가들이 많지만, 비판의 근거가 되면서 언론인들 스스로 조심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언론은 여전히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고,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며 “이제는 그와 관련된 문제를 더 정교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사무처장은 정치인의 혐오발언을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양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언론현업단체에서 만든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에는 ‘미디어 종사자는 정치인의 의도적인 혐오표현을 그대로 중계할 게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는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권 사무처장은 혐오표현이 미디어·언론을 통해 확산하는 배경에는 미디어 환경과 언론사의 구조 탓도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SNS에 혐오 표현을 게재한 뒤 논란이 일었을 때 그것을 기사화하는 기자나 커뮤니티발 기사를 만들어 내는 기자 등은 언론사 조직 내 인턴이나 수습,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권 사무처장은 “신문은 지면을 중심으로, 방송은 메인뉴스를 기준으로 언론사 기준에 따라 저널리즘을 구현하려 노력하지만, 그 이외의 기사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헐겁기 마련”이라며 “언론사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점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사회부 젠더팀 소속 박고은 기자는 언론에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경험과 소신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쳤다.

박 기자는 “경향신문과 다이브는 한국언론재단의 뉴스아카이브스 빅카인즈에 수집된 2011~2021년 전국 일간지 10개 매체의 온라인 기사 763만8139건을 전수 분석해 ‘여성 헤드라인’(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을 들여다 봤다.”며 “10년치 헤드라인에서 나타난 여성의 모습은 주로 강력범죄의 피해자, 논란과 의혹의 연루자, 결혼 후 가부장제의 성역할에 충실한 아내이거나 어머니, 또는 미모의 여신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2013~2015년에는 여친, 충격, 얼짱, 가슴, 비키니, 노출, 경악, 청순, 자태, 볼륨, 허벅지 등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며 “다행히 여성비하, 신체묘사, 차별적 표현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점차 줄어든 모양새지만, 차별적 헤드라인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을 비하하거나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글이 올라오면 남성커뮤니티에서 무분별하게 퍼지고, 언론과 정치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행태를 확인했다”며 “언론이 온라인 공간의 비상식적인 주장과 차별·혐오적 발언을 퍼 나르며 ‘스피커’ 구실을 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이렇게 생산된 기사들이 차별·혐오적 인식 강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행위’로 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언론에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차별·혐오적 보도 행태에 미적지근했던 언론들에게도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언론도 법적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제 강력한 사례가 나온다면, 각 언론은 차별·혐오적인 보도를 거르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설 것”이라면서 발언을 마쳤다.

【 청년일보=박윤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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