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력해져 돌아온 트럼프 쇼 시즌2

2025-01-22

도널드 트럼프 쇼라고 해도 당사자가 기분 나쁠 것 같지 않다. ‘넌 해고야’ 같은 유행어를 수시로 내뱉어 각인시키고, 총상을 입고도 역사에 남을 사진거리를 제공하는 타고난 쇼맨십의 주인공이니까.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제45대 대통령 트럼프 얘기다.

그의 취임식은 앞으로 4년간 트럼프 쇼가 어떻게 전개될지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할리우드 홍보 문구가 딱 어울리는 연출이었다. 주인공 트럼프는 더 세졌고, 목표와 지향점이 분명했으며, 훨씬 더 준비된 모습이었다.

취임사서 매킨리 대통령 오마주

관세·영토 확장한 제국주의자

김정은과 시즌2 기대감 내비쳐

카메라가 트럼프를 비출 때 잘 보이는 자리에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가 앉았다. 세계 최고 갑부 1, 2, 3위권인 ‘셀러브리티’ 창업자들은 기꺼이 트럼프를 위한 배경이 됐다. 트럼프 2기에서 빅테크의 활약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수년간 급진적이고 부패한 기득권층이 시민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빼앗았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국의 쇠퇴는 끝났다. (중략) 미국 시민들에게 2025년 1월 20일은 해방의 날이다.”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에 라임까지, 마치 랩 배틀 하듯 쏟아붓는 트럼프의 ‘디스’에 바이든은 시종 무표정하다가 가끔 비웃음을 지었다. 마이크가 없는 바이든이 할 수 있는 반격은 바디랭귀지뿐이었다.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 후 인근 체육관으로 이동해 지지자 2만여 명 앞에서 행정명령 서명 쇼를 했다. 무대 위 대통령 문장이 박힌 책상이 놓였다. 바이든 정책을 뒤집는 행정명령 문서를 쌓아놓고 하나씩 서명했다. 서명한 펜은 관중석을 향해 힘껏 던졌다. 야구 경기나 콘서트장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이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불렀다. “김정은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도 나의 귀환을 반길 것”이란 ‘대사’는 ‘트럼프-김정은 시즌2’에 욕심을 내는 듯했다.

취임사에는 트럼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겼다.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1843~1901년)가 롤모델로 등장했다. “매킨리는 관세와 재능을 통해 우리나라를 매우 부유하게 했다”고 소개한 뒤 “우리 국민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는 식이다.

또 매킨리가 건설을 추진한 파나마운하를 미국이 어리석게도 파나마에 넘겼는데, 미국 군함과 상선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걸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48년 전 조약을 통해 양도한 운하를 어떻게 되찾을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멕시코만 명칭을 미국만으로 바꾸고, 미국인 우주비행사를 화성에 보내 성조기를 꽂겠다고도 했다. 취임사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덴마크령 그린란드 인수 구상을 비롯한 영토 확장 의지가 확연했다.

매킨리는 미국 영토를 실질적으로 확장한 마지막 대통령이다. 1898년 하와이를 병합하고, 스페인과 전쟁에서 승리해 괌·푸에르토리코·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미국의 태평양과 대서양 진출 길을 트고,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영향력을 넓히는 ‘미국 제국주의’의 시작이었다.

트럼프와 매킨리는 관세 사랑, 영토 확장 등에서 세계관이 일치한다. 매킨리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미국의 위상을 높이는 수단으로 영토 확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부를 늘리고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미국은 다시 한번 “성장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요약되는 트럼프 1기 정책은 고립주의 성격이 강했다. 패권 경쟁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를 무기로 썼고, 무역 불균형 시정과 제조업 U턴을 추진해 보호무역 색채가 강했다. 취임사에서 “무역체계 개편을 즉시 시작하겠다”,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 보듯 트럼프 2기는 기존 정책 유지·확대에 덧붙여 경제 영토 확장을 통한 국익 극대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제 드라마가 시즌2에서 더 센 맛으로 돌아오는 건 어쩌면 불문율이다. 보다 강한 자극만이 대중을 계속 붙잡을 수 있어서다. 두 번의 탄핵, 34개 중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 평결, 그리고 두 번의 암살 시도를 이겨내고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선 트럼프의 기세가 등등하다. 아직은 트럼프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다만, 세계 경제 구조와 지정학적 여건이 지금과는 판이했을 19세기 말 정치인에 대한 오마주가 못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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