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세를 보이던 밀 자급률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생산량이 급감한 데 이어 마땅한 소비처 발굴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밀 재배면적이 줄어든 탓이다. 정부가 올해 ‘밀 자급률 5%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현실은 1%대에 머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산 밀 생산을 늘려 식량안보를 제고하겠다며 2020년 ‘밀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2020∼2025)’을 추진했다. 밀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소비체계를 확충해 2025년 밀 자급률을 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뼈대다. 이에 2020년 1만6985t이던 밀 생산량은 2023년 5만1809t으로 3년 사이 3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급률도 0.5%에서 2.0%로 뛰었다.
하지만 장밋빛이던 국내 밀산업에 지난해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지난해 밀 생산량이 3만7376t(통계청·맥류생산량)으로 전년보다 쪼그라들면서다. 자급률이 1%대로 내려앉을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대표는 “통계청이 집계한 2024년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인 38.3㎏으로 계산하면 지난해 자급률은 1.45%”라면서 “이마저도 정부의 공공비축 물량을 포함한 것으로, 소비자의 실제 소비량을 기반으로 한 실질 자급률은 더욱 낮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선 올해 생산량은 이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지난해 작황 부진으로 정부 보급종이 줄 것으로 보이는 데다 지난해 10∼11월 잦은 비로 파종이 지연된 영향이다. 농촌진흥청 식량산업기술팀 관계자는 “현재(1월)까지 파종작업이 진행 중인 지역도 있다”면서 “기상 여건이 개선되면서 생육이 양호할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늘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질적인 소비 부진이 겹친 점도 문제다. 국산 밀은 수입 밀보다 가격이 3∼4배 비싸고 제품 개발이 쉽지 않아 수요가 적다. 국내 밀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밀 수입량도 늘었지만 국산 밀 소비량은 정체된 상태다.
정부는 공공비축을 늘려 소비기반을 확충한다는 구상이지만, 지난해부터 세분화된 품질관리 기준이 도입돼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기존 ‘양호·일반 등급’에서 ‘1·2·3등급’ 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농가들이 높은 등급을 받기 까다로워졌고 소득이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밀 비축 물량(일반 밀 기준) 1만7432t 가운데 1등급은 7589t(44%), 2등급은 6690t(38%), 3등급은 3153t(18%)이다. 정부는 올해 전년보다 비축 계획 물량을 5000t 늘려 3만t을 저장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되지만, 파종 지연 등에 따른 품질 저하로 농가 수취가는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민간 판로 발굴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 대표는 “식품기업에 맞춰 대량 생산체계 구축과 품질 균일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공공비축을 늘려 명목상 자급률을 높이기보다는 실질 자급률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완 한국우리밀농협 상무는 “정부는 생산단지 확충에만 열을 올리고 여기서 나오는 밀을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면서 “공공비축 물량이라도 기존 시장에 유입되지 않도록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략작물직불금 단가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직불금 단가는 올해 1㏊(3000평)당 100만원으로, 종전보다 50만원 인상됐다. 김 상무는 “가루쌀(분질미) 등 다른 전략작물직불금과 비교해 밀의 단가가 매우 낮아 농가 입장에선 논에서 밀보다 타작물을 재배하는 게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