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허무는 게 민생이고 혁신인가

2025-02-03

정치권이 경제·민생 위기 타개 방안의 하나로 논의 중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시대착오적인 ‘주 52시간 노동 예외’ 법제화로 변질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처한 구조적 내수·수출 부진과 글로벌 보호주의 부상 등 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고루하기 짝이 없다. 전 세계적 반도체 전쟁 속에 국민경제에서 비중이 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는 시급하지만, 장시간 노동이 그 해결책인지 의문스럽다. 지금 반도체 산업 위기는 인공지능 시대로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리더십 부재와 혁신의 실패 영향이 크다. 장시간 노동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낡은 발상 자체가 혁신을 막는 것임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업계 연구·개발 직군에 대해 주 52시간 노동 상한 적용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이 발의했다. 당초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에 부정적이었지만, 이재명 대표의 ‘실용주의’ 행보 후 기류가 급변했다. 이 대표는 3일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원인 진단부터 해법까지 노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삼성전자 위기는 조직 안팎에서 ‘삼무원(삼성전자 공무원)’이란 자조가 나올 만큼 관료적 보신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혁신과 도전 대신 원가절감 경영에 안주해온 탓이 크다.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투자 타이밍을 놓친 것도 결정적 원인이다. 그런데도 주 52시간 노동 규제 탓을 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이날 공개한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구·개발 직군 노동자 90%가 반도체특별법에 반대했다.

정치권은 무엇이 진짜 혁신을 막고, 국가 성장 역량을 좀먹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심각한 저출생과 선도 기술 부족, 글로벌 통상환경 악화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일선의 기업부터 정부까지 기존의 임금 경쟁력에 기반한 수출주도 경제에 집착해선 절대 돌파할 수 없다. 주 52시간 노동 규제를 허물어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땐, 오히려 인재 유출 우려만 커질 것이다. 저출생을 심화시킬 걱정도 크다. 정치권은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주 52시간 노동 예외 법제화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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