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사 좌석을 미리 대량 확보하는 '하드블록(hard-block)' 계약이 전통 여행사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수기에는 좌석 공급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요가 맞지 않으면 남은 좌석이 그대로 손실로 직결된다. 남은 좌석을 할인 판매하는 '땡처리'가 반복되면 가격 신뢰가 무너지고 판매를 포기하면 재무 부담이 커져 여행사들은 하드블록을 '계륵' 같은 존재라고 토로한다.
온라인여행사(OTA Online Travel Agency)는 단순 중개에 그쳐 위험을 회피하지만 전통 여행사만 좌석 재고 리스크를 전적으로 떠안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최근 NHN여행박사가 3년 연속 적자 끝에 여행사업을 철수한 사례는 이러한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성수기 좌석 확보를 위해 하드블록 계약을 맺으면 비수기 물량도 함께 떠안아야 한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추석 연휴 같은 성수기에는 공급석 확보가 최우선이라 블록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비수기 판매 부진 시 남은 좌석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단가가 높고 확보 규모가 작은 '소프트블록(soft-block)'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 항공사가 명단 제출을 이유로 좌석을 회수하거나 물량을 임의 축소하는 사례가 발생해 선호도가 낮다. 결국 어떤 방식이든 리스크는 전통 여행사가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남은 좌석을 무조건 할인 판매하는 땡처리는 단기 재고 소진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상가 시장 붕괴를 부른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가에 먼저 예매한 고객 불만이 커지고, 소비자들이 할인 판매만 기다리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일부 노선에서 땡처리가 반복되면서 정가 판매율이 떨어지고 전체 수익성이 오히려 악화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손실을 감수하고 판매를 포기하는 여행사가 늘고 있다.
NHN여행박사는 5년간 연평균 40억원대 영업적자를 내며 지난 7월 여행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미소진 하드블록 좌석 약 1억8000만원어치가 재고로 남아 위약금 문제까지 불거졌다. 업계는 자유여행 확산과 OTA 경쟁 심화가 근본 원인이라고 보면서도 하드블록이 재무 부담을 키워 적자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자유여행 증가, 항공사 직판 강화, OTA 확산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했음에도 전통 여행사가 여전히 협상력 약화에 묶여 있다고 지적한다.
하드블록 축소와 관리 강화 움직임에도 성수기 좌석 확보를 위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남아 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때 하드블록은 여행사 경쟁력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담"이라며 "성수기 좌석을 확보하려면 비수기 물량도 떠안아야 하는데 자유여행 확대와 가격 경쟁 심화로 판매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외부 충격 때마다 대형 여행사조차 손실을 감당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