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잇디, 안부 전하라” 북한 사투리 쓴 이중섭을 그리다

2024-12-26

한국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 이 가족과 끝내 재회하지 못한 비극의 삶을 살았다는건 누구나 안다. 그가 평남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른 실향민이었다는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중섭’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다.

작가 김탁환(56)은 “‘평안도 말 하는 이중섭’의 목소리를 살려보겠다”며 집필을 시작했고, 지난 9월 장편소설 『참 좋았더라』를 펴냈다. 김씨가 지난 19일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山本方子·한국명 이남덕·1921~2022)가 처음 만났던 도쿄의 옛 문화학원(미술학교) 를 찾았다.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김씨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중섭을 접했다. 이중섭은 피난 생활을 부산에서 시작해 통영에서 6개월(1953년 11월~1954년 5월) 지냈는데, 진해도 종종 들렀다. “진해엔 이중섭이 다녀간 커피숍, 그가 즐겨 걸었던 산책길이 남아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황소’ ‘흰소’ 같은 이중섭의 대표작들이 나온 통영 시절에 포커스를 맞췄다. 『참 좋았더라』는 이중섭이 도쿄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과의 재회를 꿈꾸며 1955년 1월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개최한 개인전으로 마무리한다. 통영에서 보낸 화가 이중섭의 전성기를 그렸다.

이중섭은 통영에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김씨는 이중섭이 거닐었던 통영의 옛 지도를 2년에 걸쳐 제작했다. 당시 지형과 도로 등 80%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탁환이 이중섭을 꼭 써보고 싶었던 또다른 이유가 있다. “평안도 방언”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평북 출신이고 한국 전쟁 때 내려왔다.

“아버지는 사람들 많은 데서 거의 말 안 하셨다. 그런데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만나면 밤새 떠들고 놀았다. 과묵했다던 이중섭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김씨는 이중섭의 북한 사투리를 살리기 위해 평안도 출신 탈북민의 감수를 받았다.

『참 좋았더라』에선 이중섭이 고향 친구와 나눈 대화를 이렇게 썼다. 1953년 7월 도쿄에서 가족들과 일주일 지내고 돌아온 시점이다.

“남덕 형수는 앓지 않슴까? 태현이랑 태성이두 일없습니까?”

“잘 잇디! 안부 전하라 길더라.”

이번 책을 3년 넘게 집필한 김탁환은 지난 19일에야 이중섭이 다녔던 문화학원을 찾았다. 문화학원은 2018년 문을 닫았지만 이중섭이 공부했던 당시 건물 일부와 학교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을 그리고 연애를 했던 대학생 이중섭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번엔 이중섭의 알려지지 않은 도쿄살이를 한번 써볼까요?” 김씨가 활짝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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