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박목월
눈만 뜨면 엄마를
찾고 우는걸
아가를
우리는 해바라기라지요.
엄마 얼굴 따라서
두 눈이 도는걸
아가를
우리는 해바라기라지요.
엄마 얼굴 뵈이면
언제나 웃는걸
아가를
우리는 해바라기라지요.
박목월(木月, 본명 泳鍾)은 1915년 1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주 모량마을로 이사해 살았다.
건천공립보통학교와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시 「길처럼」, 「산그늘」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를 결성하고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시집으로 『산도화』, 『난·기타』, 『경상도의 가랑잎』 등이 있고, 동시집으로 『산새알 물새알』, 『오리는 일학년』 등이 있다.
1959년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된 후 문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1978년 3월 24일 새벽에 산책하고 돌아가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63세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에 박영종이라는 본명으로 아동문학가로 먼저 등단했다. 1933년 계성중학교 3학년 때 <어린이>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 특선, <신가정>에 동시 「제비 맞이」 당선으로 등단했다. 그후 <문장>지에 시가 추천 완료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인으로 활동한 후에도 꾸준히 동시를 써서 동시집을 출간했고 동시 쓰기의 길잡이인 『동시 세계』도 펴냈다.
박목월은 현대 동시의 선구자로서 「송아지」, 「다람다람 다람쥐」, 「신규의 대답」 같은 동시도 많이 썼다. 그는 4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이들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아기를 집안의 「해바라기」로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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