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까이판, 일본 돈부리, 한국 덮밥 … 한중일 덮밥 열전

2024-11-06

맛의 세계는 오묘하다. 같은 재료로 조리한 음식이라도 먹는 방법에 따라 맛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쌀밥 위에 반찬을 얹어 먹는 덮밥은 밥 따로 반찬 따로 먹는 보통의 식사와는 또 다른 맛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밥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모두 덮밥이 발달했다. 우리만 해도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회덮밥 등등 종류가 많지만 중국은 더하다. 중국말로는 덮을 개(蓋)자를 써서 까이판(蓋飯)이라고 하는데 우리한테도 익숙한 마파두부덮밥, 가지덮밥, 부추제육덮밥 등을 비롯해 돼지고기덮밥(猪肉盖饭), 소고기덮밥(红烧牛肉盖饭) 등등 그 숫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덮밥에 관한 한 일본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일본말로 덮밥은 돈부리(どんぶり)인데 우리도 즐겨먹는 소고기덮밥 규동, 돈가스덮밥 가츠동, 장어덮밥인 우나기동 등등 역시 하늘의 별 만큼이나 가짓수가 많다.

그냥 밥 먹다 그 위에 반찬 얹어서 먹은 것이 덮밥이지 덮밥 따위(?)에 무슨 역사가 있겠냐 싶지만 사실 덮밥에는 오묘하고 깊은 역사가 있다. 그리고 같은 덮밥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덮밥을 비롯해 중국 까이판과 일본 돈부리는 근본부터 차이가 있다.

먼저 한국과 중국 덮밥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옛날에는 일년에 두 차례 사일(社日)이라는 날을 기념했다. 사(社)는 종묘사직이라고 할 때의 '사'로 토지 신이며 참고로 직(稷)은 곡식의 신이다. 그러니 사일은 봄철 풍년의 기원과 가을철 수확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사람들은 이날 토지 신께 제사를 지낸 후 차린 고기와 채소를 밥 위에 덮어서 먹는데 이 밥을 사반(社飯)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밥 위에 갖가지 재료를 얹어 먹는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덮밥의 기원을 이 사반에서 찾기도 한다. 그렇다면 덮밥은 시작이 풍요의 기원과 감사를 빌며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덮밥인 까이판이 언제부터 발달했을까? 사반을 까이판의 뿌리로 본다면 사직(社稷)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것은 고대부터였으니 먼 옛날부터 덮밥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퍼진 것은 송나라 무렵으로 추정한다.

송나라 때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속 자치통감』에는 11세기 북송의 철종때 수렴청정을 하던 태황태후가 병이 들어 신하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날이 마침 사일이어서 사반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12세기 맹원로가 북송의 수도 개봉의 풍경과 민속을 묘사한 『동경몽화록』에도 지금의 중국 덮밥인 까이판 비슷한 음식이 보인다. 돼지고기, 양고기나 염통, 가슴살, 창자, 폐, 또는 오이와 생강 등을 바둑알 모양으로 잘라서 맛있게 양념을 한 후 밥에 덮는다(鋪於飯上)고 했고 이어 손님을 초청해 나누어 먹는다고 기록했다.

사반에 대한 내용인데 음식의 기본 구조를 보면 지금의 돼지고기 덮밥을 비롯한 각종 까이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어 13세기 남송의 수도인 지금의 항주 도시풍경을 적은 『무림구사』에도 사일이면 사람들이 고기와 채소 등을 덮은 사반을 나누어 먹는다고 했으니 중국의 덮밥 까이판은 송나라 이래로 대중적으로 퍼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우리 덮밥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덮밥의 뿌리로 추정되는 사반의 설명으로 조선시대 문헌을 인용했지만 다른 조선 문헌에는 우리가 사반을 먹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국과 밥을 동시에 말아먹는 국밥이 상스럽다하여 따로 국밥까지 만들어 낸 양반의 음식문화가 비빔밥이라면 모를까 덮밥으로 이어졌을 것 같지 않다. 때문에 우리 덮밥은 중국 혹은 일본 덮밥의 영향으로 발달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한편 일본 덮밥 돈부리는 유래와 역사가 또 다르다. 덮밥은 중세 일본에서도 무사와 귀족의 고급 음식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돈부리는 그 뿌리가 다르다.

18세기 중후반 에도시대의 겐동야(慳貪屋)라는 간이 음식점에서 생겨난 음식으로 본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찾았던 음식이다. 지금은 덮밥을 의미하지만 돈부리라는 이름도 밥 위에 반찬을 얹어 내온 그릇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덮밥이 발달했을까? 지금의 동경인 에도의 개발에 이어 19세기 일본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상인과 노동자들은 차분하게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밥 위에 반찬 몇 개 얹어 급하게 먹고 일을 해야 했으니 일종의 일본식 패스트푸드였다. 실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먹는 튀김덮밥 텐동이나 닭고기 계란덮밥 오야코동, 소고기덮밥 규동 등은 대부분 19세기 등장한 음식들이다.

비슷한 덮밥이지만 한국의 덮밥과 중국의 까이판, 일본의 돈부리가 모두 역사가 다르고 생겨난 배경이나 발달과정이 다르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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