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을 바꾼 리더십·정책·협상의 힘

2025-05-28

1981년 취임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트남전 패배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휘청거리던 미국의 재건에 나섰다. 미국의 국제 위상을 복구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보수정권의 ‘플레이북(playbook)’이다.

집권 첫해 레이건은 침몰 직전의 경제와 맞닥뜨렸다. 물가는 두 자릿수로 치솟고 금리는 15%를 상회했다. 경기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경제는 4% 넘게 역성장했고 실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해 10%를 돌파했다.

레이건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의 자문을 얻어 성장을 가로막던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고질적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감세 위주의 공급중시 경제정책,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시행했다.

레이건은 재정지출 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케인스주의적 총수요 진작 정책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시장의 성장 복원력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시장은 경제의 안정적 성장으로 보답했다.

1984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만끽했다. GDP는 7.2% 성장했다. 물가 상승률은 4%로 내려왔고 실업률도 7%로 낮아졌다. 재선에 나선 레이건은 그해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유권자는 레이건에게 권력을 몰아주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경제를 엄습했다. 1984년 호경기에 편승해 해외로부터 수입이 사상 최초로 4000억 달러를 넘었다. 무역수지 적자도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달러화 초강세가 문제였다. 강달러가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수입 증대에 기여했다. 달러화 가치는 1981년 이후 4년간 주요국 통화에 대하여 50% 상승했다. 달러당 200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260엔으로 급등했다.

레이건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 대표를 불러 달러화 가치 절하 합의를 끌어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2년간 달러화 가치는 45% 낮아졌다. 엔-달러 환율은 120엔대로 밀렸다. 하지만 1987년 미국의 수입액은 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무역적자는 16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적자의 주요 원인은 일본이었다. 대일 무역적자는 560억 달러를 넘어 전체의 37%를 차지했다. 일본은 반도체 등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시장을 평정했다. 자동차는 자발적 수출 통제를 시행했지만, 전자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높아만 갔다.

참다못한 레이건은 1987년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했다. 그 이후 일본 반도체는 몰락했고 그 자리를 한국과 대만이 차지했다. 일본의 사례는 통상 교섭의 결과가 산업 지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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