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에 의한 내란과 구속, 석방, 탄핵, 조기 대선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위기와 기회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검찰, 판사, 국회의원, 관료, 언론을 보면 세상 밑바닥까지 절망하며 분노하다가도 광장에 나와 응원봉을 든 시민, 국민에게 충성하는 군인, 양심에 따라 내란수괴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공무원을 보면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다. 곳곳에서 사회적 합의가 깨져 나갔던 지난 시간. 그 사이 진실을 추구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려는 이들의 면면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대선 이후 우리에게 주어질 사회 대개혁. <월간복지동향> 5월호 기고문을 정리한 연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울산저널]이승진 시민기자= 정세은 교수(충남대학교 경제학과)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분배 악화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면 저성장 문제가 저소득계층에 집중되면서 이들이 심각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저성장보다 분배 악화가 더 문제”라면서 “저성장이라 하더라도 분배가 어느 정도 평등하다면 모두의 삶은 좋아질 것이나 저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주는 공포와 고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주는 매력이 너무 크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선성장-후분배 전략, 과거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논리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선성장-후분배 전략의 문제는 성장이 먼저라는 주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성장을 위해서 암묵적으로 자본과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이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하며 노동과 복지는 희생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사고에 사로잡히면 노동 보호를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성장 기반을 훼손해서 저소득층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서 “노동 규제 완화와 정부 규제가 줄어야 투자와 고용이 일어나고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선성장-후분배와 낙수효과 논리는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중화학공업 발전을 이룬 신흥국, 글로벌기업을 거느린 선진국,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면서 “이러한 성과로 인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원리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장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됐다”면서 “이러한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저성장이라는 모순적 결과를 보이며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수익성 추구 모델을 낳았기 때문”이다.
과거 “군부는 노동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산업화를 추진했고 고도성장에 성공했지만 노동 억압, 부정부패, 불공정한 분배가 발생했다”면서 “그러나 국민에게 그 문제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산업화 정책에 찬성했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긍정적 답이 다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1987년 민주화 이후 분배 악화를 포함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지만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 날치기 시도 등 여전히 선성장-후분배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미국식 자본주의 이식을 강요당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따라 재화·금융·자본시장은 더욱 개방됐고 4대 부문 개혁이 실시됐다”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 핵심은 국가가 후퇴하고 금융시장(자본)에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이 있었지만 ‘재벌-국가’ 동맹이 ‘재벌-금융자본-국가’ 동맹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2000년대 중국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고 FTA가 활발하게 체결되는 등 세계시장이 통합되면서 우리 기업이 국제적 선두기업이 되지 못하면 망한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다국적 기업, 인력 구조조정, R&D와 마케팅 강화, 해외공장 건설, 국제 밸류체인 형성”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과정에서 제조 기반 수도권 집중과 해외 이전, 자동화와 로봇화 투자로 인한 일자리 축소가 한국 경제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같은 시기 “국가는 재벌 대주주 사익 추구를 적극적으로 규제하지 않았고 중소기업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 문제도 방치했다”면서 “그 결과 우리나라 대기업이 영향력 있는 다국적 기업이 된 것”이라고 직격했다. 이후 “금융시장은 실물투자를 지원하지 않고 투기 금융에 몰두하는 행태를 보이며 건설업과 부동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외환위기 이후 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정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수익성 모델을 추구한다”면서 “투자와 고용이 작으면서 이윤이 크게 날수록 성공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저성장과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졌고 불로소득을 추구하며 일하기를 거부하는 세태를 양산했다. “그 사이 소득과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자산이 자산을 불리는 수준에 이르러 소수는 부를 축적하며 안정적 삶을 살고 대물림하는 반면 다수는 노력과 상관없이 불안하고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 상황이 “분배 악화-가계소득 축소-내수 부진-저성장”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정의롭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조성 △불로소득 자본주의 해소와 동반·지속가능성장 △금융정책·조세재정정책 활용”이라고 제시했다. 첫째, ‘정의롭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조성’에 있어서는 “주택시장의 실수요자 위주 재편, 재벌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확대 방지(기업기배구조 개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 소상공인을 괴롭히는 플랫폼기업과 가맹본사 갑질을 막기 위한 입법, 과도한 임대료 부담을 막기 위한 상가임대차법 개정”을 주문했다.
둘째, ‘불로소득 자본주의 해소와 동반성장·지속가능성장’에 있어서는 “자본의 생산적 투자 및 혁신 추구 견인,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강화,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당한 보상(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두터운 수준의 복지 확대(대규모 고용 창출)”을 제안했다. 셋째, ‘금융정책·조세재정정책 활용’에 있어서는 “사모펀드의 과도한 수익 추구 규제, 통화·금융 공공성 강화(가계부채 관리, 취약 채무자 보호), 성장과 복지 확대를 위한 국채 발행 및 증세(고소득·고자산자 누진세 적용, 직접세 증세 기반 보편적 부담)”을 제안했다.
이승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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