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3%로 합의한 것을 두고 시민·노동단체가 “시민의 뜻을 배반한 졸속합의”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306개 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17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연금개혁 합의는 공적연금제도와 노인빈곤 문제에 대한 어떠한 원칙도 철학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존엄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한 공적연금의 가치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 43%에)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동의한 것은 차기 집권을 의식해 골치 아픈 숙제 덜어내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연금행동이 소득대체율 43% 합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4~5월 진행된 국민연금 개혁 공론화위원회의 권고 때문이다. 성·연령·지역, 연금개혁에 대한 의견 분포를 고려해 시민대표단 500명을 선정해 진행한 ‘공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개혁 방향은 ‘더 내고 더 받기’였다. 공론화위는 보험료율을 현행 대비 4%포인트 올린 13%로 하는 대신 소득대체율도 현행 40%에서 50%까지 올릴 것을 권고했다. 결국 지난 14일 여야 합의는 공론화위 결론에서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낮췄다. 재정안정 효과를 올리고, 소득안정 효과는 낮춘 셈이다.
정용건 연금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보험료율은 무려 44%나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은 겨우 7% 인상이라면 누가 인정하겠느냐”며 “이제 지금의 청년들이 미래의 노인되는 순간 빈곤을 벗어날 길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찬진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소득대체율 43%라는 것은 연금 가입기간이 평균 27~28년으로 예상되는 청년 세대들에게 최저생계비 136만원에 턱없이 모자라는 90만원 남짓의 용돈으로 노후를 알아서 책임지라는 것”이며 “기성세대와 달리 용돈밖에 안 되는 연금을 준다면서 연금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연금가입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향후 연금액을 인구구조 변화와 연동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자동조정장치는 이번엔 말고 다음 연금 개혁특위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먼저 제안한 것이 민주당’이라고 밝혔다”며 “다음 특위에서 자동조정장치까지 도입해서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공론화위는 정부·여당이 하자고 해서 한 것인데 거기서 결정한 소득대체율 50%와 어느 정도 비슷한 수치에 합의했어야 했다”며 “43%가 어디서, 어떻게 나온 수치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 43%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계산법으로 환산해 보면 향후 한국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33.5% 정도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