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동자 단체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관계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소된 지 14년 만이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부장판사는 23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의) 이적표현물 소지, 취득, 반포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는 부분이 있고, CD의 경우 압수수색이 위법해 증거가 기각됐다”며 “피고인의 노트북, 파일 내용과 관련해서도 증거가 부족해 피고인들이 이를 소지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문건 중에 이적표현물로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적의 목적이 있어야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피고인들이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지고 문건을 취득, 소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일반 교통방해, 집회 시위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된다”며 벌금 100만원과 30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A씨 등은 2006년 11월 한 조합원에게 e메일 계정으로 4건의 이적표현물 문서 파일을 전송받은 뒤 이듬해 1월 다른 사람의 e메일로 보내는 등 국가보안법 7조를 위반한 혐의 등으로 2011년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받은 문서는 ‘사람중심의 철학’ ‘한국사회 성격론 :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연구’ ‘대중활동가론’ ‘또 하나의 투쟁’ 등 북한의 통치이념인 ‘김일성 주체사상’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고 한다.
2017년 위헌법률심판 제청, 2023년까지 재판 중단
1심 선고가 늦어진 건 A씨 등이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7년 6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오래 걸린 이유가 크다. 국가보안법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7조 5항은 1항이 정한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들은 “해당 조항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현실적으로 위태롭게 하거나 명백한 위험성이 발생하지 않는 다양한 사상에 대한 학문적 연구나 토론,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까지 제한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은 2023년 9월 헌재가 해당 법률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리기까지 중단됐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 2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A씨 등에게 징역 2년~2년 6월과 자격정지 1년 6월~2년을 각각 구형했다. 결심공판에서 법원은 “오래 전 사건이라 기록 검토가 필요하다”며 선고 기일을 정하지 않았다가 22개월이 지난 이 날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 후 피고인들에게 “(선고에) 10년 이상 걸렸는데 고생 많았다. 유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