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후계농 자금 사태가 남긴 상처와 교훈

2025-03-04

연초부터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 사태를 취재하며 만난 청년농들은 정부가 청년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후계농 육성자금 융자 방식을 ‘상시 배정’에서 ‘선별 배정’으로 변경하면서 청년농의 부실 대출 우려를 이유로 들었기 때문이다. 자금 미배정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피해를 본 당사자로서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청년농에게 떠넘기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발한 청년농들은 집회를 열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책을 요구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예산을 추가 확보하고 지난해 선정된 청년농·후계농까지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선회했다.

한 청년농은 인터뷰에서 “농식품부가 현재 상황을 청년농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의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 갈등으로 관련 예산 편성이 끝내 불발된 사정을 정부가 설명했다면 청년농의 반발이 덜 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올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후계농 육성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관련 예산을 늘리기로 했지만,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결국 증액분이 반영되지 않은 예산안이 확정됐다.

일각에서는 청년농이 당장 필요치 않은 자금을 미리 대출받는 가수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정부가 예산 부족 상황을 공유하지 못했다고 추정하지만, 청년농에게 오해를 사기 쉬운 배정 방식 변경 이유를 내놓은 건 아쉬웠다.

다만 청년농의 부실 대출을 막기 위해 배정 방식을 변경했다는 정부 해명도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 후계농 육성자금 정책은 계약서나 계약금 이체 내역 같은 증빙 서류 없이도 대출이 가능했다. 이는 농촌 관행상 구두계약을 선호해 농지 거래등의 과정에서 서류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도 계약을 증명할 만한 자료가 없어 피해를 입증하지 못한 청년농이 나타나며 문제가 더욱 확산했다.

청년농들은 후계농 육성자금이 청년농 육성사업을 신청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는 만큼, 정치권은 이들이 마음놓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예산을 충분히 편성해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근거 없는 ‘묻지마 대출’이 나오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체계화하고 청년농도 계약 과정을 문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효 정경부 기자 hy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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