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대신 고정익 비행기 쓰고 소방청에 전권 줘야”

2025-04-29

전 소방관 이윤근 - 37년 베테랑 소방관의 산불 해법

서울 면적의 80%를 태운 영남 내륙의 ‘괴물 산불’이 지난달 31일 꺼진 지 한 달이 채 안 돼 대구에서 또 산불이 나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관심사에서 산불은 비켜나 있다. 참사가 터질 때만 요란한 고질병이 여전하다. 37년간 소방 진화와 예방에 몸담은 베테랑 소방관 이윤근(66) 씨를 만났다. 2019년 소방준감(경무관급)으로 퇴임한 그는 21대 국회에서 ‘소방관 출신 1호 국회의원’인 오영환 전 의원의 보좌관을 맡아 소방 선진화와 산불대책 강화에 전력했다.

산불 대형화로 헬기 한계 명백

공군 C-130기, 6배 이상 살수 가능

산림청 지휘권 소방에 넘길 때

국회, 참사 나면 법안 발의 시늉만

“헬기는 지렁이 소변, 비행기는 폭포수”

괴물 산불에 이어 대구에서 또 산불이 나 이틀간 252㏊를 태웠는데요.

“진화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괴물 산불 때나 이번이나 헬기의 공중살수에만 의존했어요. 헬기는 야간엔 뜨기가 어렵고 바람도 초속 10m 넘으면 이륙 허가가 안 나는 등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번 대구 산불도 28일 한낮에 났는데, 헬기 52대를 투입했다지만 밤에는 못 뜨니 낮에 진화한 불이 밤에 다시 번져 완전 진화까지 이틀이 걸린 거죠. 밤에 수리온 헬기 2대를 투입했다지만, 헬기는 야간엔 고도를 높여 비행해야 하니 그만큼 목표 지점에 물을 맞히는 능력도 떨어져 큰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공군 C-130 수송기 같은 고정익 비행기였다면 밤이나 강풍 상황에도 살수가 가능해 하루 만에 진화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 초에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소방청 등이 공군 C-130 수송기를 산불 진화용으로 쓰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군 당국이 소극적 입장을 보여 중단됐죠.”

고정익 비행기가 그렇게 좋은가요.

“그럼요. C-130기는 헬기(2000L)에 비해 6배인 1만2000L의 물을 투하할 수 있어요. 서울 소방항공대 근무 시절인 1988년~94년 소방 헬기를 탔는데 우리끼리는 헬기 살수를 ‘지렁이 오줌 뿌리기’라고 해요. 그만큼 감질난다는 뜻이죠. 반면 C-130은 폭포수를 붓는 격이죠. 또 헬기는 물이 뒤로 날아가지만, C-130은 살수량이 워낙 많아 화점에 제대로 투하될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군은 왜 소극적인가요?

“안보가 주 임무인 군용기 전용이 불안하다는 거죠. 하지만 산불이 집중되는 봄철 석달간 공군이 보유한 C-130 수송기 여러 대중 2대만 산불 진화에 겸용하자는 거니, 무리가 없을 겁니다. C-130기는 전국에 산재해 어디서 산불이 나도 30분 안에 투입 가능합니다. 물탱크만 부착하면 되니 예산도 70억원이면 돼 가성비도 높죠.”

“강원·경북에 ‘산불 소방서’ 둬야”

헬기 문제만이 늦장 진화의 원인은 아닐 텐데요.

“맞아요. 산불 진화를 산림청이 지휘하도록 규정된 지휘체계도 문제죠. 소방은 신고받는 즉시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데, 산불은 영림·육림이 주 업무인 산림청의 지휘를 받으니 현장 출동과 인력 배치가 늦어져요. 또 소방은 법률상 민가에 불 번지는 걸 막는 게 주 임무다 보니 주불 진화는 산림청 헬기에 맡기는데, 헬기의 한계는 명백하죠. 결국 산불도 소방청이 전권을 갖고, 산림청은 복구나 예방에 집중하도록 법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달 26일 의성과 이달 6일 대구에서 진화 헬기가 각각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숨졌는데요.

“안타까운 참사지만 늘 있는 일입니다. 산에는 계곡을 타고 골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이 헬기 뒤편으로 불어오면 양력이 떨어져 추락 위험이 커집니다. 저도 80년대 말 잠실 수해 때 15층 건물 옥상에서 헬기에 사람을 싣고 이륙하자마자 뒷바람을 맞아 추락했어요. 다행히 지상 1층 천장 높이까지 물이 차 있어 살았지만, 충격은 바위에 떨어져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 만큼 컸죠. 뒤에 탄 분은 허리가 나가고, 헬기는 반파됐어요.”

괴물 산불은 근 열흘 만에 비가 내린 덕에 진화된 거 아닙니까?

“그렇죠. 갈수록 산불 진화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조금만 비가 와도 진화가 됐는데, 지금은 숲이 울창해 낙엽이 1~2m나 쌓인 탓에 그 안의 불씨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방 용어로 ‘훈소 화재’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연기만 보여요. 그러다 산소가 일시에 공급되면 순식간에 큰불이 되는 겁니다. 이번에도 잔불 정리에 많은 인력을 투입한 거로 압니다.”

산불을 막을 근본 대책은 없을까요

“화재는 자연적으로 일정 요건이 되거나 사람이 실수하면 발생하는 것이니 100% 막을 수는 없어요. 아직도 지방에선 산소를 찾아 향을 피우거나 논두렁을 태우다 실화가 나기 일쑤입니다. 또 2018년 고성 산불은 변압기 폭발이 원인이었죠. 그때 현장에 있었는데 변압기에서 튄 불덩이 전파 속도가 달리는 사람 속도보다 빨라 막을 수가 없었죠. 결국 산불은 초기 골든타임에 ‘초전박살’ 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려면 강원 해안·경북 내륙 등 산불 집중 지역에 산불 전용 소방서 설치가 절실해요. 도심은 8분 이내에 소방차가 도착하도록 소방서가 배치돼있지만, 산불은 헬기가 아무리 빨리 이륙해도 20분은 걸리거든요.”

“침대 대신 요 깔고 자는 이유 있어”

실화로 산불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

“고의성이 없었다면 강하게 처벌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산불 예방은 처벌보다 국민 의식이 중요해요. 유치원 때부터 불의 무서움을 알게 하고 자력으로 화마를 피하는 법을 교육해야 합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때 승객 대부분이 119 전화만 걸었지 스스로 탈출할 생각을 못 해 참사를 당했어요. 그때 열차 문을 열 수 있었으니 철로로 내려갔으면 살 수 있었어요. 한 초등학생이 그렇게 해 살아났죠. 평소 아버지가 ‘화재 나면 낮은 자세로 벽을 따라 뛰어라’고 교육한 결과라고 해요.”

최근엔 도심 고층 빌딩도 화재가 빈번합니다.

“실내에 가연성 물건을 가급적 두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집에서 침대를 쓰지 않아요. 요 깔고 자죠. (왜 침대를 안 쓰나요?) 침대 하나 타는 열량이 자동차 한 대 타는 열량 비슷할 겁니다. 매트리스에 합성수지가 포함돼 유독가스가 많이 납니다. 그 결과 호흡이 곤란해져 질식사하는 이가 많습니다. 불타 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대피 공간 역할을 하는 베란다가 실내화해 없어진 것도 문제예요. 베란다를 정상화해 화재 시 구조를 요청하거나 완강기를 타고 탈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층 아파트 화재도 빈발하는데요.

“고층 건물에 불나면 전기 등 모든 게 끊어진 최악의 조건을 전제하고 진화에 들어갑니다. 소방관들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승강기 대신 계단으로만 수십층을 올라가야 해요. 50층 건물 옥상에서 지상까지 불이 내려가는 데 2분도 안 걸려요. 건물 화재 주원인인 가연성 자재부터 못 쓰게 해야 합니다. 20년 전부터 입법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건설업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는데 오영환 의원이 임기 첫해인 2020년 가연성 자재 사용을 금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해 이듬해 통과시켰죠. 하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과거 건물들은 여전히 화재에 취약한 상태죠.”

“게으른 국회, 의원 100명으로 줄여야”

오영환 의원 보좌관을 맡아 국회를 경험해 보니 어떻습니까?

“참사가 터지면 의원들이 앞다퉈 법안을 발의합니다. 그리곤 끝입니다. 오영환 의원이 대형 화재 때마다 땜질식으로 바뀌었던 소방법을 전면 재개정하려고 전력했지만, 동료 의원들은 ‘알았어’만 반복할 뿐 법안 심사 소위조차 열지 않더군요. 소위는 한 달에 최소한 이틀은 열게 돼 있는데 5개월간 한 번도 안 열린 적도 있어요. 당 지도부에서 관심 갖는 법안만 처리하고, 안전·민생 법안은 발의만 할 뿐 처리는 하세월이예요. 여야가 똑같습니다. 이런 국회라면 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봐요.”

소위가 열리면 의원들이 법안 공부는 하고 오나요.

“대부분 안 하고 오죠. 이미 전문위원 선까지 검토도 끝났고 부처 간 협의도 됐는데 느닷없이 한 의원이 지엽적 문제를 제기하면 심사가 정지되기 일쑤예요. 그러면 해당 의원실로 달려가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70~80%입니다. 법안을 발의만 하면 ‘입법 성과’로 쳐주는 폐습 대신 본회의 통과 실적으로 의원 성적을 매겨야 합니다.”

오영환 의원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요.

“본인도 소방관 출신 의원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재선에 도전할 마음을 가졌어요. 하지만 의총에서 아무리 얘기를 한들 받아들여지는 게 없다 보니 소방관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죠. 문재인 정부 말기에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예산은 지자체 관할이라 여전히 인건비를 걱정해야 하고, 소방청도 독립기관이 됐지만, 인사권을 지자체장이 가져 대형 화재에 전국의 소방력 신속 동원이 어렵습니다. 고칠 게 워낙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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