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고백
어느 소방관의 고백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 소방관. 그들이 119 구급차를 몰며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대단한 영웅 서사도, 훈훈한 미담도 아닙니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일 뿐이죠.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백경 소방관은 소방서 구급대원으로 9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출동 현장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아서일까요. 그는 매일 유서와 일기를 쓰고 잠이 듭니다. 소방관이 마주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서사를 들려드립니다.

차 한 대가 며칠째 졸음쉼터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신고였다. 고속도로 위로 폭설이 쏟아져서 구급차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멀찍이 경찰차 한 대가 보였다. 고속도로 순찰대였다. 담배를 피우던 경찰이 졸음쉼터로 진입하는 구급차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기, 구석에 있는 쏘나타요.”
“문이 잠겨 있나요?”
“네.”
“안에 누가 있어요?”
“선팅이 진해서 잘 안 보여요.”
쉼터 한쪽에 차를 세우고 소생장비를 챙겼다. 문제의 차량으로 다가갔는데 경찰 말마따나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지럽게 날리는 눈발이 창문에 반사돼서 꼭 차 안에도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손차양을 하고 조수석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좌석 아래에 그게 있었다. 계란 프라이나 해먹을까 싶은 손바닥만 한 프라이팬, 그 위로 허옇게 무너진 번개탄 하나.
구조용 가위를 꺼냈다. 가위를 뒤집어 손잡이 부분의 돌기로 창문을 내리쳤다. ‘와자작’ 소릴 내며 돌기 주위로 거미줄처럼 잔금이 퍼졌다.
남자는 운전석에 누워 있었다. 좌석을 최대한 뒤로 물리고 등받이를 끝까지 젖힌 채였다. 추웠는지 두터운 모포를 온몸에 둘둘 감고 있었다.
모포를 젖히고
등허리에 가라앉은 시반을 확인했다.
경동맥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 가져다 댔다. 혈관 안쪽까지 빼곡하게 침묵이 들어차 있었다. 단단하게 굳은 손가락과 발가락은 허공에 대고 꾹꾹 눌러 찍은 판화 같았다.
남자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춰 있었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상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펼쳤다.
신분증을 살피는 동안, 두 눈을 의심했다.
뒷면을 빼곡하게 채운 주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