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수 무렵
- 김경실
여린 살 차가와 선뜻 다가서지
못해 동구 밖 서 있었습니다.
몇날 며칠 헤살대던 바람
지나는 마을마다 무작정 풋정
풀어놓고 입춘 지나 저끝
마라도로부터 북상해 갔습니다.
버들강아지 산수유 제가끔 제
몫으로 이 나라 산야에서
야무지게 봄물 오를쯤
이젠 옛이야기로 남은 허기진
유년의 봄날이 흑백 필름
거꾸로 돌아
모두 한꺼번에 살아옵니다.
우수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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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김경실 시인의 시 <우수 무렵>입니다. 시인은 우수가 되니 “얼여린 살 차가와 선뜻 다가서지
못해 동구 밖 서 있었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오늘은 24절기 둘째인 우수(雨水)입니다. 우수는 말 그대로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뜻인데 이때가 되면 추운 북쪽지방의 대동강물도 풀린다고 했지요. 아직 추위가 남아있지만, 저 멀리 산모퉁이에는 마파람(남풍:南風)이 향긋한 봄내음을 안고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예부터 우수 때 나누는 인사에 "꽃샘잎샘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이 있으며 "꽃샘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도 있지요. 이 꽃샘추위를 한자말로는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떤다는 뜻을 담은 말로 ‘화투연(花妬姸)’이라고도 합니다. 봄꽃이 피어나기 전 마지막 겨울 추위가 선뜻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앙탈을 부려보기도 하지만 김경실 시인은 “옛이야기로 남은 허기진 유년의 봄날이 흑백 필름 거꾸로 돌아 모두 한꺼번에 살아옵니다.”라고 읊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