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보험사들이 저작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디지털 족쇄'를 푼 하나손해보험은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정착을 위한 제도적 지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각사 공시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보험사 4개사(카카오·캐롯·신한EZ손해보험, 교보라이프플래닛) 작년 당기순이익은 -1574억원으로 전년(-1425억원) 대비 악화됐다.
회사별로는 캐롯손보가 -662억원으로 전년(-760억원)보다 개선됐으나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손보는 -373억원에서 -482억원으로 △신한EZ손보는 -78억원에서 -174억원 △교보라플은 -214억원에서 -256억원까지 적자 폭이 확대됐다.
반면 그간 디지털 보험사를 표방했으나 작년부터 대면 채널을 강화, 사실상 디지털 타이틀을 뗀 하나손보의 경우,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하나손보 당기순이익은 -280억원으로 전년(-879억원)과 비교해 600억원가량 손실을 줄였다.
하나손보는 보험대리점(GA) 채널 영업을 중심으로 대면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준 전속 설계사 252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면 모집 수입보험료(588억8500만원)가 CM(온라인, 474억4600만원)을 넘어선 상태다.
업계는 이번 실적이 우리나라 디지털 보험 현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보험시장은 전통적으로 설계사를 통한 대면 영업이 강세다. 계약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고 복잡한 보험상품 특성상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약관을 이해하는 것보다, 설계사 설명을 듣고 가입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 보험사는 주력 채널을 온라인으로 운영한다. 소비자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보험료 90% 이상을 전화, 우편, 온라인 등을 통해 모집해야 하는 등 보험업법상 대면 영업이 제한된 경우가 많다.
출범 이래로 흑자를 기록한 회사가 한곳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속가능성을 위해 구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디지털 보험사가 시장에 다양성과 소비자 편익, 혁신적인 상품을 제공하는 등 순기능이 있음에도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다.
작년 보험연구원은 '국내 디지털 손해보험회사 동향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보험사가 수익성을 높여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갈 수 있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 디지털 보험사들의 경우 모기업이 금융지주, 대형보험사, 빅테크 등 안정적인 회사기에 적자를 견딜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적자 구조가 지속되는 한 신규 시장 진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