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쌓아둔 기업 대출 후순위… 증권사 서학개미 마케팅도 조사

2025-12-01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국민연금 카드를 꺼내 든 데 이어 기업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대기업이 달러를 쌓아두고 원화로 바꾸지 않을 경우 정책대출에서 사실상 페널티를 주고 증권사를 대상으로는 해외 투자 마케팅 관련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휴일이었던 11월30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 등이 환율 관련 유관기관들의 수장이 전부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수출 기업의 환전과 정책 자금 연계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해외투자 관련 투자자 설명 및 보호 적절성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 외환 스와프 계약 연장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마련 등을 4대 과제로 제시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정책은 수출 기업의 환전 실태 및 해외 투자를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고 이를 무역 금융과 같은 정책자금 공급에도 반영하겠다는 내용이다. 수출기업들이 원·달러 환율 상승을 기대하면서 달러를 시장에서 환전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는 이른바 ‘래깅 효과’가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업의 외화예금 월평균 잔액은 918억 8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환전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정책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소극적인 기업에는 기존에 여신을 회수하는 등의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환전 우수기업은 대출 심사시 우대해주거나 환전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일정 부분 보전해주는 방식도 거론된다. 해외 자회사 수입 배당금 익금불산입을 확대할 경우 ‘자본 리쇼어링’(국외 자회사가 거둔 소득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촉진해 외화수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환전 내역까지 일일이 살핀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학개미 투자를 부추기는 증권사들의 고객 마케팅도 감시 대상이다. 기재부가 지난달 주요 증권사를 불러들인 데 이번에는 금감원이 직접 현장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세의 주된 원인으로 청년층의 해외주식 투자 열풍을 지목하면서 “젊은이들이 ‘쿨하다’면서 해외투자를 많이 하는데 유행처럼 번지는 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실제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주식 규모는 2022년 442억 달러에서 올해 10월 170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정부가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추가 과세를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만큼 개인 투자자를 직접 겨냥한 세제 카드보다 금융사를 통한 우회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아울러 한은과 국민연금이 맺고 있는 통화 스와프 계약 연장도 사실상 확정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 100억 달러로 시작돼 650억 달러까지 늘어나 있는 상태인데 세부 협의 과정에서 더 증액될 여지도 있다. 통화 스와프는 국민연금이 필요한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먼저 빌려 쓸 수 있어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이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시키는 새판짜기는 외부에 노출된 ‘전략적 환헤지’ 룰의 전면 손질을 시작으로 ‘상시적 환헤지’ 도입과 ‘전술적 환헤지’ 확대, 달러채 발행을 통한 외화조달 다변화 등의 카드가 다양하게 논의선상에 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4자 협의차 간 합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전술적 환헤지 확대다. 전술적 외환익스포저 조정은 성과급 평가 논란이 적고 시장에 미치는 신호도 미미해 단기 외환시장 안정책으로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연금은 현재 총 외환익스포저의 ±5% 범위에서 전술적 익스포저를 조정할 수 있으며, 이를 ±10%로 늘려 환율 변동성에 기민하게 대응하자는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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