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1부 기후전쟁, 요동치는 산지 (3) 피해 막을 길 없는 ‘극한호우’ 익산, 연이어 특별재난지역 지정 6일간 연평균 강수량 45% 내려 양수기로 물 뺐지만 침수 못 막아 불확실성 커 만반 대비도 역부족 작목 전환…현실적으로 어려워 중앙정부서 치수 전략 정비해야

전북 익산 북부지역 농민들은 ‘폭우’라면 한숨부터 쉰다. 농사를 지으면서 수해 한번 겪어보지 않은 농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2년 만에 세번은 다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익산 북부지역에는 2023년 7월13∼18일 누적 강수량 596.5㎜(함라지점 기준)를 기록한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전북지역 연평균 강수량(1326.8㎜)의 45%에 달하는 양이 엿새 만에 내린 셈이다. 40년 만의 기록이라던 폭우는 다음해 또다시 반복됐다. 2024년 7월7∼10일 익산 북부지역 누적 강수량은 445.5㎜, 10일에는 한시간 동안 125.5㎜의 비가 내리쳤다. 하지만 여름 장마만 문제가 아니었다. 불과 두달여 만인 9월20∼21일에도 이틀간 225.5㎜의 비가 내렸다. 그 결과 익산은 폭우로만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농민들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줄 알았다’는 그날의 기억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웅포면에서 블루베리농사를 짓는 이영노씨(71)는 “흙탕물에 아예 염색이 돼버린 보온커튼을 볼 때마다 지난 집중호우 때가 떠오른다”면서 “이 지역에서 수십년간 농사지었지만 농장에 순식간에 들어차는 물이 무서워 몸을 피하기는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관록의 농사꾼도 혀를 내두르는 폭우에 청년농들은 더욱 절망했다.
수박·상추·멜론 등을 재배하는 김준호씨(36·망성면)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들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밤새 비닐하우스를 지키며 물을 퍼올렸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을 계속 겪다보니 그저 허탈할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2023년 첫 폭우 피해 때 비닐하우스 전체가 침수돼 수박 2기작 물량 전부를 폐기했다. 다음해엔 수박농사 후작으로 멜론을 심었는데 7월 집중호우로 전량이 망가졌다. 한푼이라도 건질 생각에 농장을 신속히 복구한 뒤 멜론을 다시 심었지만 그마저도 수확 직전인 9월말 기습 폭우로 또다시 모두 잃게 됐다.
김씨는 “열심히 일했건만 대출 빚만 늘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망성면 내촌리에서 상추농사를 짓는 이의성씨(32)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2019년 비닐하우스 5동으로 농사를 시작해 매년 규모를 늘려 이제 28동을 운영하는 성실한 청년농이다.
이씨는 “양수기를 돌리며 밖으로 물을 빼내려고 애썼지만 비가 계속 쏟아지니 배수로가 넘쳐 소용이 없었다”면서 “개별 농가로서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하늘에 기댈 뿐”이라고 토로했다.
청년농들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농사 실력이 부족했거나 장마 대비가 미흡해서 생긴 문제라면 반성하고 철저한 예방을 다짐하면 될 일. 하지만 극한호우 수준의 폭우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한 청년농은 “동네 어르신 중엔 기후 재앙을 미리 막을 길이 없으니 이제 농사를 그만 지어야겠다는 분도 있지만 우린 이제 와서 관둘 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목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김씨는 “(일각에서 말하듯) 7월 장마철을 피할 수 있는 작목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그간 쌓은 노하우나 판로 개척 등을 고려할 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씨도 “이미 투자해놓은 게 많아 작목을 전환할 수 없다”면서 “외국인 근로자들도 이미 상추에 맞춰 교육을 시켜놨는데 다른 작목을 또 가르쳐서 숙련도를 높이려면 그 또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답답해했다.
농민들은 기후변화가 극심해지는 만큼 중앙정부가 이에 맞춰 전반적인 치수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익산 북부처럼 강 하류지역의 농민들은 매년 극한호우가 반복된다는 가정에 맞춰 치수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2023년 7월 한달 내내 이어진 호우로 경북 예천군에선 산사태로 마을주민들이 사망하고, 충남·전북 등 곳곳에선 농경지가 유실됐다. 이때 사망 47명, 농작물·시설 피해 6만8000여㏊ 등 최악의 피해가 발생했다. 2024년에도 7월과 9월 극한호우로 지역 곳곳에서 피해가 반복됐다.
익산=윤슬기 기자 sgyoo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