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잦은 5월 초입입니다. 오뉴월, 장마 오기 전까지 이어지는 연례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반가운 비입니다. 오뉴월 가뭄은 지독한 편이어서 덤바우 개울이 바싹 마를 때까지 계속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최근 서너 해는 이즈음의 비로 그 가뭄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기후 변화가 그런 식으로 변화한다면 마다할 일은 없겠으나 두고 볼 일이고, 성마르게 따져봐야 속만 시끄럽겠습니다.
촉촉이 내리던 비가 안개비로 바뀌는 틈을 타 아내와 저는 미리 만들어 둔 이랑에 고추를 심었습니다. 비가 반갑기는 해도 질정 없이 내려 제때 이랑 고르기가 어려운 사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올해가 유독 그래서 심을 고추에 걸맞은 이랑을 모두 갖추지 못했군요. 농사에 안성맞춤인 날씨가 몇 날이나 되겠습니까? 농사라는 게 워낙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라서 때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직업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어느 날, 근심 어린 눈길로 밭을 바라보는 선조 농민의 구부정한 허리를 문득문득 상상합니다. 그의 고뇌는 단순했을 것입니다. ‘매년 원하는 만큼 수확을 얻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사의 지속 가능성은 때에 따라 조건이 조금 달라질 뿐 농사의 역사만큼이나 유서 깊은 농민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탄력성
우리의 경작지, 농업생태계의 탄력성은 지속해서 교란되면서도 특정한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교란에 대한 저항성을 탄력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늘, 가뭄, 영양 결핍 또는 낮은 온도와 같이 생산을 제한하는 외부 조건에 의한 스트레스가 그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산불 같은 자연 현상이나 인간 활동에서 비롯되는, 식물 바이오매스(생물량)이 전부 또는 일부가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측면입니다. 이러한 교란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다시 말해 탄력성이 높은 농업생태계는 당연히 생산성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입니다.
생태계의 입장에서 인간 활동, 다시 말해 농사는 그 자체로 교란 행위입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은 자연 생태계에 반하는 활동입니다. 이는 그 세기만큼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생태계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기술을 개발해 왔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탄생시키면서 이른바 녹색혁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부메랑처럼 농업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흉기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농경지에 가해진 과다한 인위적 투입이 생태계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어서 마침내 탄력성이 무디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농생태학은 (농업생태계의) 회복탄력성 증강에 집중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태 강화
“생태 강화”는 P. Tittonell (2014)가 제시하였으며,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의미합니다. 농생태학에서는 생태 강화를 통해 교란 발생에도 특정한 구조와 기능 장치를 유지하는 회복탄력성 확보를 목표로 합니다. 이 목표 달성의 전략은 농업생태계 내의 생태적 과정과 기능을 활용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서 분리되면서도 그에 귀속되는 농업생태계의 특성에 걸맞은 생태학적 원리에 입각한 방법론입니다.
생태 강화를 위한 농생태학적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생물 다양성(Biodiversity) 증진: 계획된 다양성, 연관된 다양성, 주변 다양성을 통합하여 해충 조절, 양분 순환 등 생태계 기능을 향상합니다. 다양한 작물 재배(예: 간작, 윤작), 다년생 작물 도입 등은 농업 시스템의 다양성과 생산 안정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1) 계획된 다양성: 의도적으로 농업생태계 내에 도입되고 관리되는 생물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재배 작물, 가축뿐만 아니라 덮개 작물, 녹비 작물, 지렁이 등 토양 생물, 혼합 작물(섞어짓기) 시스템에 포함된 다양한 종 등이 포함됩니다.
2) 연관된 다양성: 계획된 다양성의 결과로 자연적으로 농업생태계 내에 존재하게 되는 생물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작물이나 가축, 야생 생물, 예를 들어 해충의 천적, 수분 매개자, 토양 미생물, 잡초, 야생 동물 등이 포함됩니다. 계획된 다양성은 연관된 다양성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 농업 시스템에 도입된 작물과 재배 방식이 특정 천적의 서식지를 제공하거나 토양 미생물 군집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연관된 다양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3) 주변 다양성: 농업생태계 외부, 다시 말해 주변 경관 생태계에 존재하는 생물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농경지를 둘러싼 숲, 습지, 초지, 하천 등 자연 서식지나 다른 유형의 농업 시스템에 존재하는 다양한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주변 다양성은 농업생태계 내부로 유입되어 생태계 기능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 숲에 서식하는 천적이 농경지로 이동하여 해충을 포식하거나, 주변 식물에서 꽃가루 매개자가 와 작물 수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경관 생태계의 구성 요소들(농업 생산 지역, 인간 영향이 중간 정도인 지역, 자연 지역)의 조합과 배열은 주변 다양성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토양 건전성: 경운 방식 개선(예: 무경운, 최소 경운), 덮개 작물 사용, 유기물 투입 등은 토양 구조, 수분 보유력, 양분 순환, 생물 활동을 개선하여 작물 생산을 지원합니다. 특히 피복 작물은 토양 수분 보존 및 잡초 억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양분과 에너지 순환 최적화: 작물 잔류물 관리, 덮개 작물, 가축 통합 등 농업생태계 내에서 양분과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순환하도록 관리하여 외부 투입 의존도를 줄입니다.
해충 및 질병 관리: 생물 다양성 증진을 통한 자연적 조절 메커니즘 활용, 윤작, 피복 작물 활용, 토양 관리 등 생태적인 방식을 통해 해충과 질병 발생을 억제합니다.
이처럼 생태 강화는 단일 작물 시스템보다는 생물 다양성이 높은 시스템에서 생산 안정성이 높아 더 높은 회복탄력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
지속 가능한 농업은 단일한 기술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농업생태계의 생태학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심지어 정치적 요소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농생태학은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설계하고 관리하기 위해 생태학적 개념과 원칙을 적용하여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핵심 틀을 제공합니다. 이 틀은 생태계 기능 강화, 사회경제적 측면, 전통 지식과 혁신, 정책과 거버넌스 등에 걸쳐 있는데 농민의 일차적 관심인 생태계 기능 강화만 살펴보겠습니다.
생태계 기능 강화
1) 양분 순환 촉진: 외부 투입에 의존하기보다는 작물 찌꺼기(잔여물) 활용, 덮개 작물, 녹비 작물 등을 통해 덮개층을 형성함으로써 유기물을 토양에 공급하여 양분을 순환시키고 토양 비옥도를 유지합니다. 특히 식물 찌꺼기 분해는 작물 뿌리가 양분을 흡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2) 토양 건전성 개선 및 보호: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토양 구조를 개선하며, 수분을 보존하고 빗물 스며들기를 촉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덮개층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최소 경운 또는 무경운 시스템은 토양 교란을 줄여 토양 건전성을 도모합니다. 이 과정에서 토양 생물 다양성(선충, 곤충 등)이 증진됩니다.
3) 생물 다양성 증진: 농장과 주변 경관 생태계 수준에서 계획된 생물 다양성(작물 품종, 섞어짓기)과 주변 생태계의 연관성을 통해 해충 조절, 양분 순환 등 생태계 기능을 강화합니다. 혼작(섞어짓기)은 단일 작물 재배보다 수확량이 늘고 잡초와 해충 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4) 해충과 질병 관리: 생물학적 방제, 작물 윤작, 작물 찌꺼기 관리 등을 통해 해충과 질병 발생을 줄입니다. 덮개층 아래에서 뿌리가 자라면 토양 전염성 병원균을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물 관리: 덮개 작물 등을 통한 수분 보존, 빗물 스며듦 증진 등으로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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