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최인숙의 프랑스 문학 산책] 레미제라블과 그 배경지 몽트뢰유 쉬르 메르

2024-11-25

“어느 일요일 밤, 한 청년이 길모퉁이에 있는 모베르 이자보 빵집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다 붙잡힌다. 그 일로 5년간 갤리선에서 노역하는 형벌을 받는다. 형무소에 갇힌 그는 탈옥을 여러 차례 시도하다 결국 19년의 형을 살아야 한다. 빵 한 조각에 청춘을 날린 그 남자는 장 발장(Jean Valjean). 마흔 살에 형무소를 나온 발장은 수도사들이 연 학교에 들어가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우며 영리해지는 길만이 증오심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팡틴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Montreuil-sur-Mer)에 도착한다. 공장주인 마들렌 아저씨의 육체는 꼭 발장을 닮았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끈다. 5년 전 이곳에 온 마들렌은 기발한 아이디어 제품을 생산해 큰돈을 벌고 시장이 된다. 이 도시는 마들렌 덕에 눈에 띄게 번영한다. 자베르 형사는 시장을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계속 감시한다. 마들렌은 그를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한다. 자베르! 그는 법만을 오로지 믿는 인간 군으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부정을 저지를 수 없고 범죄자는 재기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 1막의 간략한 줄거리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 북부 몽트뢰유 쉬르 메르. 서른다섯 살의 젊은 빅토르 위고는 1837년 늦여름 그의 뮤즈 쥘리엣 드루에(Juliette Drouet)와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 북부를 난생처음 여행했다.

파리로 돌아오는 9월 4일 그는 오팔 해안을 가로질러 몽트뢰유 쉬르 메르에 잠시 들렀다. 불로뉴 성(Boulogne)을 보고 바다를 따라 산책을 하고 북쪽의 허름한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도시를 떠나 6시간 동안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저녁 늦게 바다 위의 마을 에타플(Etaples)에서 휴식을 취했다. 동이 트자 그는 그곳을 떠나 성벽의 도시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위고와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이 짧은 만남은 상상을 초월한 은혜였다. 위고는 이곳을 ‘레 미제라블’ 1막 ‘팡틴(Fantine)’의 주 무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문학에서 두 번 등장했다.

첫 번째는 1765년 로렌스 스테른(Lawrence Sterne)이 이곳을 방문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횡단한 ‘감정적인 여행’이란 소설의 무대로 활용했다. 두 번째는 1862년 빅토르 위고가 이곳을 레미제라블의 소재로 삼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위고로 인해 장 발장과 자베르 경감 간의 주요 갈등의 장소이자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의 고향으로 탈바꿈한 몽트뢰유 쉬르 메르. 주인공 발장은 그가 시장이 된 도시를 번영시킬 거대한 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전통적 검은 유리 산업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해 이 공장으로 재탄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거리, 병원, 시청 등을 생생히 묘사했다.

자갈길에서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수레가 보행자를 깔아뭉개는 주요 장면은 위고가 호텔 마당으로 이어지는 자갈길인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생피르맹(Saint Firmin) 거리에서 비슷한 사건을 목격한 것이다. 위고가 성벽에서 만난 신부는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로, 사과를 깨무는 아이 역시 소설 속 인물로 재탄생했다.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집필할 때 연인 쥘리엣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장면을 세세히 이야기했고, 그녀는 이에 반응하여 조언과 인상, 감정을 전했다. 위고와 쥘리엣의 사랑과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관객들은 위고와 쥘리엣의 눈을 통해 레미제라블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몽트뢰유 쉬르 메르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이는 그들의 문화유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시 전체가 레미제라블에 젖어 있다. 길모퉁이, 상점 간판, 식당 메뉴판… 빅토르 위고의 그림자는 여전히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큰 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바캉스철이면 장 발장, 가브로슈, 코제트, 자베르의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비지땀으로 보낸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1996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는 레미제라블의 세계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소리와 빛’의 쇼가 열린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충격적인 인간 이야기가 성곽의 신비로운 무드 속에서 펼쳐진다. 몽트뢰유 쉬르 메르 문화청은 이 놀라운 유산을 수집하여 사운드와 이미지로 만들어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있다.

몽트뢰유 쉬르 메르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하늘에서 가까운 마을이다. 40미터의 캉슈(Canche)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는 3킬로미터의 긴 성벽이 펼쳐져 있다. 이 특권적인 지리 덕분에 요새의 소명을 물려받았다. 성벽은 도시가 높기 때문에 해안선과 초원의 절경을 자랑한다. 완벽히 보존된 이 성벽 위를 지금도 사람들은 걸어 다닌다.

성벽 산책로는 주로 들판과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성벽의 북쪽에는 14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인 샤르트뢰즈 드 뇌빌이 있다. 바로 앞에는 몽트뢰유 중심부로 접근할 수 있는 가파른 경사면 자갈길인 생피르맹이 있다.

이 거리의 경치는 너무나 빼어나 종종 지역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이 독특한 거리는 레미제라블의 영화 속에서 여러 번 각색돼 배경으로 이용되었다. 오늘날 이 자갈길의 경계에 있는 집들은 작은 식당이나 예술품 가게들로 변신했다.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에서 40분 떨어진 몽트뢰유 쉬르 메르는 오팔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림 같은 경치 위를 화려한 꽃으로 수놓은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18세기의 전형적인 집들과 클라프 앙바(Clape-en-Bas) 거리의 골목길은 매우 독특한 미를 자랑한다. 하수구 냄새를 억제하는 밸브라는 단어에서 이름을 딴 이 거리는 몽트뢰유 쉬르 메르에서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구경거리다.

또한 몽트뢰유에는 천 년 묵은 종교 유산들이 있다. 라틴어 ‘monsteriolum(작은 수도원)’에서 유래된 몽트뢰유(Montreuil)의 기원은 실제로 신성함과 연관된다. 926년 피니스테르의 수도사들은 노르망디 침략 때 몽트뢰유로 도망쳐 피난처를 찾았고, 이곳에 생 왈로이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도시에 신성함을 부여했고 몽트뢰유라는 이름을 얻었다.

몽트뢰유 쉬르 메르는 수 세기 동안 식도락가들이 찾는 음식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13세기부터 이곳 사람들은 아름다운 숲들, 해안들, 방목장과 늪지가 어우러진 초원에서 풍미 물씬 풍기는 음식들을 즐겼다. 이 전통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러분이 만약 이곳을 여행한다면 ‘라 그르누이에르’나 ‘샤토 드 몽트뢰유’ 레스토랑에 들러 바삭바삭한 야채튀김이 살포시 얹혀있는 아귀 크림 스프나 아귀 스튜를 먹고, 보방 신부가 개조한 중세 성벽의 원형길을 거닐어 보길 권한다.

캉슈의 절경과 18세기 호텔들로 둘러싸인 골목길은 더욱 환상적이다. 이 꿈같은 산책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군데 군데서 위고를 만날 것이다. 레미제라블이 프랑스인들의 영혼을 어떻게 자극하고 있는지, 그리고 빅토르 위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정녕 알게 될 것이다.

[ 글=최인숙 논설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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