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정윤주(22·흥국생명)는 배구부를 찾아간 첫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린이날 전날이라며 고가의 뷔페 음식점에 데려간 것이다. 해맑은 어린이는 “배구를 하면 매주 이런 곳에 오겠구나” 생각했다.
어린이 정윤주가 혹했던 ‘뷔페 나들이’는 그날이 끝이었다. 운동부 생활은 고됐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종종 찾아왔다. 그러나 중·고교를 거치며 운동선수에게 제일 필요한 ‘경쟁심’이 생겼다. 2021년 흥국생명에 입단한 정윤주는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낸 2024~2025시즌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 15일 경기 화성 롤링힐스 호텔에서 만난 정윤주는 “비시즌부터 정말 열심히 훈련했는데 팀 전체가 웃을 수 있게 돼 너무 기뻤다”며 “우리가 했던 과정이 ‘통합우승’이라는 결과로 나와 참 다행”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흥국생명은 앞서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챔피언결정 5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잡고 6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정윤주도 올시즌 내내 흥국생명의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하며 챔피언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했다.

정윤주는 날개 공격수로 큰 키(176㎝)는 아니지만 뛰어난 탄력을 앞세워 정규리그 득점 11위(432점), 공격 성공률(37.62%) 8위, 서브 5위(세트당 0.298개)를 기록했다. 특히 공격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대선배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 무대였던 챔프전에서 긴장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직전 시즌 4경기 출장에 그쳤던 정윤주는 한 시즌 만에 팀의 주축으로 거듭났다.
정윤주는 “데뷔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하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된다’고 자신감을 채워준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님의 말씀이 도움이 됐다”며 “기술적으로는 블로커 ‘터치 아웃’을 유도하는 공격을 많이 시도하며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윤주는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로 성장하려면 안정적인 리시브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새로 오신 요시하라 도모코 감독님께 리시브와 수비 등 부족한 기본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주의 ‘롤모델’은 한국배구의 전설 김연경이다. 공교롭게도 김연경이 지난 2월13일 GS칼텍스전 승리 후 취재진과 기자회견 중 깜짝 은퇴 선언할 때 정윤주가 함께 있었다. 그는 ”연경 언니가 흥국생명으로 돌아오셨을 땐 ‘내 배구 인생에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었다“며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며 멘털과 기술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정윤주는 시즌이 끝난 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은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전 출전 선수들의 소집일이었다.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정윤주는 다음 달 초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2025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참가를 준비한다.

아직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정윤주는 “대표팀에 뽑히게 돼 정말 영광스럽고, 큰 선수들이 많은 외국팀과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라며 “한국 여자배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프로에서 4번째 시즌을 치른 정윤주는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다.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이 길을 끝까지 걷고자 한다.
정윤주는 “아웃사이드 히터하면 떠오르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며 “연경 언니처럼 리더십이 있고, 팀을 이끌어가는 정말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바랐다. 당장은 한국에서 기량을 갈고닦는 것이 우선이지만, 배움이 필요하다면 해외리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상상도 한다.
정윤주는 김연경이 없는 다음 시즌에도 흥국생명의 매력적인 배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그는 “연경 언니의 빈자리를 잘 메워서 흥국생명의 배구를 보여드릴 테니 배구장에 많이 찾아와주시면 좋겠다”며 “새로운 감독님과 달라진 배구로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스물둘의 봄,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