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성공회(국교회)를 이끄는 최고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 자리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오르게 됐다.
3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이날 성학대 은폐 의혹으로 사임한 저스틴 웰비 전 대주교의 뒤를 이을 인물로 사라 멀랠리(사진) 런던 주교를 지명했다. 1534년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며 영국 성공회가 출범한 지 약 50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지도자가 국교회를 이끌게 됐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의 실질적 지도자로, 전 세계 8,500만 명에 이르는 성공회 신도들의 영적·상징적 수장 역할을 한다. 다만 영국 성공회의 명목상 수장은 국왕이다.
간호사 출신인 멀랠리는 1999년부터 잉글랜드 최고간호책임자(CNO)로 활동하다가 2004년 사목에 전념했고, 2002년 사제로 서품받은 뒤 2018년에는 최초의 런던 주교로 임명됐다. 런던 주교는 성공회 서열 5위에 해당하는 요직이다.
전임자인 웰비 전 대주교는 변호사 출신 교회 인사가 제기한 아동 성학대 의혹을 은폐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지난해 11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왕실추천위원회(CNC)가 1년 가까이 후임을 검증해 멀랠리를 국왕에게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멀랠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며,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대주교로서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성 커플 축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진보적 입장을 밝혀온 인물로, 교회 내 보수·자유 진영 간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보수 성향의 세계성공회미래회의(GAFCON)는 “영국 교회가 지도력을 잃었다”며 즉각 반발했다.
멀랠리 주교는 내년 1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리는 의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주교직에 오르며, 이후 영국 왕실이 참석하는 즉위 행사도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