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현장서 일하는 13종 로봇 개발
현대건설 3D프린팅·커튼월 로봇 실증하기도
"법적 정의·안전인증·책임체계 정비와 테스트베드·가점제 필요"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현장 자동화를 위해 AI·로봇 기술 도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 담당한다는 점에서 현재 건설업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중대재해 감축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법적 분류가 모호하고 기술 발전 속도 대비 규제 해소가 느리다는 점이 한계로 떠올랐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들이 건설현장 AI 도입을 위한 각종 기술 연구에 힘쓰고 있다.
◆ 삼성물산, '로봇 현장' 전환 시동…해외와의 격차는 여전
한국은 제조업 분야 로봇 밀도가 세계 1위지만, 건설업은 로봇·자동화 적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형사 중심 '건설로봇 트랜스포메이션 컨소시엄'을 설립한 일본이나 건설 생산성 향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미국·영국 등 해외 국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이유로 생산성 하락과 인력 부족, 안전사고 다발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22년 건설사 최초로 '건설 로보틱스팀'을 출범, 현재 13종의 건설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앵커 설치 로봇인 '인클로봇'은 위험·반복 작업을 자동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4세대까지 개발됐으며 부산 온천4구역 재개발과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 재건축 현장 등에서 실증을 완료했다. 인력 대비 생산성을 133% 높였으나, 장애물이 많고 복잡한 현장 특성상 자율주행 기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어 보완 작업 중이다.
이 밖에도 자동으로 타공을 해주는 로봇이나 종전에는 100% 수작업에 의존했던 철골 볼팅(구조 부재를 연결하고 고정하는 작업) 로봇 등의 연구도 진행했다. 현재는 단위 작업 로봇 위주지만, 실질적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3D BIM(빌딩정보모델링), 디지털 트윈, AI와 연계한 공정 단위 로봇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건설 로봇 분야의 과제로는 불명확한 관련 법적 정의나 적용 규정, 안전인증 경로가 제시된다. 국토교통부 기본계획에 차세대 지능형로봇 등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건설 특화 지원은 아니고, 올 초 출범한 'K-휴머노이드 연합'에서 논의되는 안건 또한 현장용 건설로봇과의 연결 고리가 약해서다.
이성재 삼성물산 건설기술디지털팀 그룹장은 "건설업의 하도급 구조와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는 투자·운영 주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며 "건설 로봇의 성능을 눈에 띄게 고도화하려면 근원 기술 개발·융합과 활용에서의 운영·정비 자격 제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 3D프린팅·시공로봇 도입한 현대건설…제도 공백에 '발목'
현대건설은 현장에 적용 중인 로봇이 직면한 과제와 해결 방안을 제언했다. 현재 경기 용인시 '힐스테이트 용인 둔전역' 등 전국 일부 단지에는 콘크리트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구조물을 여러 세그먼트로 출력한 뒤 현장에서 조립·설치하는 방식인데, 주로 조경에 활용한다. 주택 등 건축물에 쓰려면 구조적으로 안전하다는 증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시험체계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선 대형 제조사와 협력해 품질 인증을 진행, 3D 프린팅 주택이 인허가와 분양까지 이른 사례가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코드에 3D 프린팅 시험·인증 절차를 반영하고, 국영기업이 주도해 시험·구조검증을 시행한다.
콘크리트 외벽을 이용한 벽식 구조로 건물을 지은 뒤, 외벽에 유리 패널을 덧붙여 마감하는 '커튼월' 시공 로봇도 있다. 기존에는 지상에서 크레인 등으로 패널을 들어 올려 설치해야 하는 탓에 바람·비 등 기상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로봇을 활용하면 작업 위치 근처까지 패널을 자동 이송할 수 있다.
이 같은 시공로봇 또한 상용화까진 먼 상황이다. 건설사 입장에선 제작비가 늘어나고, 협력업체는 유지비 부담이 커진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건설로봇 자체의 법적 분류가 모호한 데다 안전인증 등 기준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어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조원석 현대건설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스마트 건설 가점제 도입 ▲콘테크(ConTech, 건설과 기술의 합성어) 지원 확대 ▲실증 테스트베드 구축 등을 제안했다. 대형 공공사처럼 입찰 단계부터 스마트기술 가점을 넓히는 한편, 오픈 이노베이션·혁신기업 프로그램을 확대해 국내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 연구원은 "스마트건설 기술 확산은 기술·예산·교육·문화적 저항을 극복하는 순간 시작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현장에 신기술 수용 문화를 정착시켜야 산업 전반의 생산성·안전성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