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이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와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아니 나서지 않아야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질없는 걱정이 있다면 정의와 불의가 모호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가 생각나서다. 누군가 외치는 정의의 반대편에서 더 극단적 정의에 대해 절규하는 모습이 때로 섬뜩한 이유다. 토마스 모어도 얘기한 것처럼, 종종 세상의 참혹한 불의를 초래하는 것은 극단적 정의에서 기원한다.
국가와 민족,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그 주변에서 논의되는 신념의 더미는 때로 협력적,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일본과 중국을 대하는 민족주의의 상이함은 물론 일본제국주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모순된다.
《운암잡록》에서 유성룡은 붕당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조정은 둘로 나뉘어 당파의 화가 비로소 일어나더니, 이이와 정철 등이 일어나게 되어서는 더욱 분열되었다. 사대부들이 나와서는 조정에서 논의하고 들어가서는 집에서 꾀하는 짓이 오직 피차간에 이기고 지는 것, 같은 당파끼리는 두둔하고 다른 당파는 공격하는 것으로 일삼아 번갈아 승부가 갈리더니, 계미년(1583, 선조 16)ㆍ기축년(1589, 선조 22)에 이르러서는 극도에 달했다.(후략)”
오늘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봉건적 붕당과 현대 민주주의 정당은 다르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유성룡이 지적한 그 모든 부분들이 오늘 우리에게서 보이는 이유를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권력 독점에 따른 폐해는 물론 붕당 간 분산에 따른 문제에 대한 지적도 그냥 과거의 그림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유성룡이 바라 본 그 붕당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금 우리 정당에서는 완벽하게 사라진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과거를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위치에 있다.
때로 그것은 먼저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왕가에서 상복을 입는 기간이 왜 심각한 정치 문제가 되는지는 물론 그것이 초래한 피바람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오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겐 오늘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미래세대가 오늘 우리가 행한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바라 볼 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확신하는 그 모든 절대가치처럼 성리학적 질서도 당대에는 대체불가한 절대적 가치였다. 우리는 과거를 평가하는 존재인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평가받는 위치에 있다.
나도 언젠가 과거의 존재가 된다.
장상록 <완주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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