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자영업자] ① 부산 대표 상권이었는데…5곳 중 1곳 공실

2025-01-27

트리 축제도 못 막은 남포동 빈 상가, 부산대 보세 옷 골목은 사라져공실률 부산대앞 23.37%·남포동 19.75%…연말 특수 실종 폐업 늘어

[※편집자 주 = 부산의 골목 상권은 한때 활기로 가득 찬 곳이었지만, 최근 줄어든 인구와 고령화로 인해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았던 부산의 위기는 전국의 어느 곳보다 빠르고 크게 다가왔습니다.

연합뉴스는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자영업자의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원인과 해법을 찾아보는 기획 기사를 3편에 걸쳐 송고합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차근호 기자 = 거리에 울리는 캐럴, 시선을 사로잡는 반짝이는 트리에도 연말연시 특수는 사라지고 거리에 쓸쓸함만 가득했다.

지난 연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여러 차례 둘러본 부산 중구 광복로.

이 길이 이어주는 남포동·광복동·부평동의 주요 상권은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유동 인구와 매출액이 전국 10위안에 드는 곳이었지만 가게 곳곳이 텅 비어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트리 축제가 열리는 12월과 1월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인데 지금은 임대 안내판이 곳곳에 나붙어 거리에 적막함을 더했다.

부산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 광복로 메인 광장인 '시티스폿' 앞 건물은 1층부터 3층까지 통으로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유명 화장품 가게가 있던 이곳은 2019년 폐업한 뒤 아직 비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명동거리라 불렸던 메인 광장에서 도시철도 남포역까지 500m 거리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건물 3~4곳 걸러 1곳에 공실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중심 거리를 벗어나 광복동, 남포동 골목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200㎡가 넘는 대형 평수 1층 전체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건물 1층이 비자 건물 3~4층까지 통째로 비어 있는 경우도 예사였다.

전체가 공실인 광복동의 한 3층 건물 1층에는 인건비가 들지 않는 무인가게가 입점을 앞두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임대인이 공실로 두기 좀 그래서 임시로 무인가게를 차린 뒤 새 임차인이 구해지면 철거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6층 규모의 꼬마 빌딩에는 4층 미용실을 빼고 모두 비어있었다.

최근까지 6층에 있던 게스트하우스는 관광객 감소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용실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하다 우리만 남았다"며 "건물 자체가 텅 비고 주변에 공실이 늘면서 찾는 사람이 더 줄어 이전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14년째 광복로 일대에서 영업한 공인중개사 A씨는 "남포동은 원래 12월에 장사가 제일 잘돼 연말·연초에 폐업하는 경우가 드문데 최근에도 매물 접수가 꾸준하게 증가했다"며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새로 개업한 것 빼고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는 문의조차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부산의 '젊은 상권'을 상징하던 부산대학교 앞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취재진이 부산대 정문에서 출발해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으로 이어지는 '부산대학로'를 둘러봤을 때 대여섯 곳 건너 한 곳은 점포가 비어 있었다.

우선 정문에서 나와 바로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은 1층 소규모 점포를 제외하고는 2층과 3층이 통째로 비어있었다.

왼편의 4층 건물도 모두 비었고, 입구에는 붉은 줄이 쳐져 학생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들 걸물에서 열걸음쯤 걸어가면 '지하 임대' 전단이 붙은 철문이 내려진 건물이 보였고, 바로 옆 붉은 벽돌 건물은 2층부터 5층이 전부 비어있었다.

노른자로 불리던 부산대역 사거리의 모퉁이도 '임대' 안내판이 곳곳에 붙었다.

예전에는 술집이 모여있던 사거리 인근 골목에서 폐업한 가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짬뽕, 양식, 고기 무한리필, 카페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문을 닫고 간판을 뗀 상태였다.

도시철도 부산대역 3번 출구 앞에 있던 보세 옷 골목은 이미 3∼4년부터 공실이 넘쳐나더니 이제는 가게들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이 골목들은 한때 '야시 골목'이라 불리며 일본에까지 소개된 곳이지만 지금은 문을 연 점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텅 빈 점포 유리에는 철거 가격을 할인해 준다는 철거 업체 광고지와 권리금이 없다는 임대 광고지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야시 골목에서 유일하게 문을 열고 있던 한 타로집 주인은 "5년 전부터 이가 빠진 것처럼 공실이 나기 시작하더니, 3년 전부터는 거의 다 빠져나갔다"면서 "저도 아이들이 부산대 출신이라 예전이 이 골목에서 옷을 고르던 모습이 선한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부산대자율상권조합 김도연 이사장은 "10∼15년 전만 해도 주말에는 야시 골목에 사람들이 떠밀려 다녔는데 지금은 온라인에서 옷을 파는 몇몇 가게를 빼고는 남아있지 않다"면서 "살아남은 상인들은 10%도 되지 않고, 장사가 안돼서 결국 보증금을 까먹고 나가는 분들을 많이 봤다"고 전했다.

공실이 우후죽순 이어지며 콧대 높던 임대료도 내려가는 추세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부산대 앞에서 11년째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한창 잘나갈 때 월세 1천200만원, 일세가 50만원 넘던 A급 점포 자리도 보증금을 대폭 내리고 월세도 깎아주려 하는데도 계약 성사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권리금 2억원짜리도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권리금이 사라질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년째 점포를 운영 중이라는 다른 상인도 "보통 상가를 2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임대료와 상승한 인테리어 비용에 2년도 못 버틸 거 같으니 고민만 하다가 안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학령인구가 줄어든 데다가 경기가 좋지 않고, 온라인 쇼핑으로 직격탄을 맞은 보세 옷·휴대전화 등의 가게가 업종을 빨리 전환하지 못하면서 이런 상황을 맞은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규모 상가 기준 부산대는 공실률이 23.37%, 남포동은 19.75%를 기록했다.

가게 5곳 중 1곳은 비어 있다는 것이다.

handbrother@yna.co.kr ready@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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