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SNS 화면을 내리다가, 한 영상에 눈을 뺏겼습니다. 카메라 감독이 손에 들고 짝던 카메라를 드론에 연결해 공중 위로 띄우는 촬영 현장 영상이었습니다. ‘보편적인 기법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1시간짜리 드라마를 통으로 ‘원테이크’ 촬영했다”는 설명에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컷을 나눠 찍으면 쉬운 일인데, 뭣 하러 그런 수고를 했을까. 그나저나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드라마라며. 1시간 원테이크가 말이 되나?’
생각을 멈추고 바로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4부작이구나?’ 생각할 정도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소년의 시간>의 첫 에피소드를 눌렀습니다. 영상이 재생되고 20분쯤 지났을 무렵, 어떤 스포일러도 듣지 않고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데에 안도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을 함께 ‘체험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치 실제 상황같은 1시간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그 생생한 혼돈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이쯤 ‘뒤로 가기’를 누르고 <소년의 시간>을 보고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총으로 중무장한 경찰이 13살 소년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가 사는 집에 들이닥치면서 시작됩니다. 공포 반 당혹스러움 반으로 “뭐하는 거냐” “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외치는 가족을 지나쳐, 경찰은 겁에 질린 소년 제이미에게 말합니다. “널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고요.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제이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빠, 나 아무 짓도 안 했어!”라고 말하지만 이내 호송차에 태워집니다. 차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그는 또래보다도 작고 연약해 보입니다.
제이미는 동급생 케이티 레너드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조용하지만 영민하고, 그런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기엔 너무 어려보이는 그가 진짜 범인일까요. 제이미가 유치장에 도착해 질문을 받고, 머그샷을 찍고, 그가 동석 보호자로 지정한 아버지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시청자는 자신이 제이미가 된 것 같기도, 그 아버지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원테이크로 가쁜 호흡 하나 놓치지 않은 이 드라마는 우리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2화는 학교, 3화는 제이미의 상담실, 4화는 제이미의 집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어른들은 그 과정에서 ‘요즘 애들’을 자신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경찰이 탐문을 위해 찾은 학교에서 아이들은 불쑥,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케이티와 제이미가 친구였니?”라며 물리적 상호작용을 묻는 경찰에게 아이들은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 벌어졌던 일을 언급합니다. 경찰은 ‘그게 살인 사건과 무슨 상관이지?’ 묻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범죄를 다룬 드라마이지만 인물들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어 오히려 그 속을 더 알기 힘듭니다. 공동 각본가 잭 손은 “제이미를 타자화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게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 말처럼 <소년의 시간>은 단순히 제이미가 범인이냐, 아니냐를 궁금케하는 추리물이 아닙니다.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청소년 세대에 분명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가 그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 ‘어떤 일’에는 유해한 남성성의 전파 등 인셀화, SNS 공간으로 옮겨간 교묘한 교내 괴롭힘, 자극적인 콘텐츠 시청의 저연령화 등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13일 공개된 이 작품이 이후 전세계 79개국에서 1위를 했다는 건, 이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라는 걸 암시하는 듯 합니다.

만듦새도 훌륭합니다. 대본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같은 연기들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찍었을까’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제이미 역의 오언 쿠퍼는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런 13살짜리 아이가 어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 밀러’ 역할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그레이엄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네 편짜리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주를 꼬박 들여 배우와 제작진이 동선과 카메라 움직임을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한 뒤에 촬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숨을 데가 없는 원테이크 촬영은 날 것의 감정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긴 호흡으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질문을 제이미를 넘어서 사회에 던지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다큐멘터리 지수 ★★★★★ 실제 상황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리얼하다
긴장감 지수 ★★★★ 등장인물이 거칠게 숨을 내쉴 때마다, 마음이 같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