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딥시크(Deepseek), 딥시크, 딥시크. 지난 한 주, 전 세계 미디어를 도배한 그 단어 ‘딥시크’는 말 그대로 깊은 두통 ‘딥시크(deep sick)’를 가져다줄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왔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유럽의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인데, 딥시크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출시하면서 유럽의 기술 생태계도 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 상황이 유럽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다가올 것인가.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느라 바빴다.
미국의 AI 행정명령 폐지, 유럽 인공지능법(AI Act) 적용, 그리고 딥시크의 성공이 맞물리면서 유럽 AI 시장은 기회와 위협 요소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딥시크를 바라보는 유럽 AI 기업,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의 세 가지 시선을 소개하고 앞으로 유럽 AI 생태계에 딥시크가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유럽 AI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
트럼프는 임기 시작과 동시에 바이든 정부가 시행했던 ‘AI 행정명령’을 폐지하는 급진적인 노선을 택했다. 딥시크가 화제가 되기 이전부터 트럼프의 이러한 행보가 유럽의 AI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미국 AI 공급업체들이 유럽의 인공지능법(AI Act)에서 요구하는 보안 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특히 의료, 금융, 에너지와 같은 고도로 규제된 산업 분야의 기업 고객들은 AI 도입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보안, 규제 등에 앞서 있는 유럽 기업은 이러한 상황에서 신뢰를 우선시하는 AI 솔루션을 개발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상황을 기회로 보는 쪽의 입장이다. 중국 기업 딥시크의 보안성과 개인정보보호에 관해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여론 속에서 유럽 AI 기업은 의료, 금융, 에너지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AI 인프라와 전문화된 시스템을 구축해 AI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유럽 AI 스타트업들이 딥시크 개발을 발판 삼아 사업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챗지피티(Chat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클로드(Clude) 모델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아직 구축하지 않은 유럽 스타트업들에게 딥시크가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저렴하고, 하드웨어 및 컴퓨팅 파워가 적게 필요하기 때문에 더 지속 가능하며,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오픈소스 솔루션이므로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딥시크의 R1 모델이 오픈AI의 유사한 모델 대비 가격이 10분의 1 이하로 책정되어 개발자들이 AI 애플리케이션을 더 저렴하게 구축할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한다.
#떠오르는 LLM 스타트업엔 악재
딥시크의 저비용 AI 모델 출시는 유럽의 기존 LLM(대형 언어 모델) 스타트업들에게는 한숨이 나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Mistral AI), 독일의 알레프 알파(Aleph Alpha) 등 오픈AI의 대항마로 떠오르던 유럽의 AI 스타트업들은 딥시크로 인해 차별화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미스트랄 AI(Mistral AI)는 메타와 구글의 AI 연구자들이 2023년 5월에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창업 10개월 만에 독자적인 LLM과 챗봇을 개발해 ‘유럽판 챗GPT’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미스트랄 AI는 지난 목요일 딥시크의 R1 모델에 대해서 “훌륭하고 현 기술이 보완될 수 있는 좋은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동시에 ‘미스트랄 스몰3(Mistral Small 3)’라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미스트랄이 그동안 주목받은 이유는 미국 AI 기업에 비해 에너지와 비용 측면에서 훨씬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미스트랄 스몰3 출시에서는 에너지와 비용 절약 측면을 강조하던 이전과 달리, 최근 출시된 딥시크의 대규모 오픈소스 추론 모델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딥시크와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알레프 알파(Aleph Alpha)는 독일의 AI 기업으로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LLM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어를 포함한 다양한 유럽 언어에 특화된 모델을 구축해 유럽의 AI 주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알레프 알파의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요나스 안드룰리스(Jonas Andrulis)는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 시프티드(sifted)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면, 딥시크 모델은 훌륭하지만 곧 메타(Meta)의 라마(Llama4) 모델이 더 나아질 것이고, 12개월 후에는 이들 모두 구식이 될 것이다”라며 지금 성급하게 결론 내릴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런던 기반 AI 전문 벤처캐피털 에어 스트릿 캐피털(Air Street Capital)의 창립자이자 파트너인 네이선 베네이치(Nathan Benaich)는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제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성능을 달성할 방법을 손에 넣게 되었으니 유럽의 LLM 개발 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짚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유럽 AI 스타트업들에게 ‘존재론적 위기(existential crisis)’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존 LLM 개발사들은 대규모 자금 조달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려 했으나, 딥시크가 오픈 소스 모델을 활용하면서 이러한 접근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딥시크 이용한 스타트업 주목
이에 따라 일부 투자자들은 기존 LLM 모델보다는 AI 애플리케이션 계층(application layer)에서 기회를 찾으려 한다. 애플리케이션 계층은 생성형 AI의 ‘실제 활용’을 책임지는 단계로, 일반 사용자나 기업이 특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접근하는 실질적인 서비스다. 즉,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컫는 영역이다.
런던 기반의 웹3 및 AI 벤처 빌더 블록 도조(Block Dojo)의 투자 디렉터 알렉스 볼(Alex Ball)은 유럽의 기술 전문 매체 Tech.eu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등장했고, 순간적으로 게임의 규칙이 바뀐 듯 보인다. 하지만 한 달 뒤에는 또 다른 혁신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AI 스타트업들은 공급자보다 최종 사용자가 쓰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딥시크의 성공은 AI 모델 개발에 대한 기존 투자 전략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일부 VC들은 AI 기업에 대한 투자 가치 평가를 재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 언어 모델(LLM) 분야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투자자들은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독일 UVC 파트너스의 올리버 쇼페(Oliver Schoppe)는 시프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자금이 투입된 LLM 분야에서 일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업계 전반에서는 이미 기초 모델에서 벗어나 AI 응용 프로그램이나 AI 에이전트와 같은 분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딥시크의 오픈소스 모델은 새로운 혁신과 스타트업의 등장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딥시크 모델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기업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AI 생태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유럽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AI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를 맞이했지만, LLM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어디에 자본을 집중할지에 따라 유럽 AI 시장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유럽 최대 모빌리티 스타트업 허브인 드라이버리(The Drivery)는 4월에 열리는 상하이 오토쇼(Shanghai Auto Show)에 드라이버리 파트너사와 함께 참석하는데, 사절단을 조직해 상하이에서 1시간 거리인 딥시크 본사를 방문할 예정이다. 유럽 기술 생태계의 딥시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지금 유럽 AI 생태계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신뢰와 규제를 기반으로 한 혁신이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이며, 기존의 LLM 중심 투자 전략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몇 년간 딥시크의 영향력이 유럽 AI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가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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