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 추위가 더 맵차다. 마음은 이미 봄으로 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입춘을 지나며 추위를 견뎌낸 단단한 마음이 풀어졌다. 그 작은 마음의 틈새가 마음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참선 마을의 선방은 겨울 햇볕이 들지 않는 북사면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내린 첫눈이 채 녹지 않았는데, 여러 번의 폭설이 더해지면서 겨울 내내 눈이 그대로 하얗게 덮였다. 남도에서 오래 살았던 터라 겨울 내내 하얀 눈이 가득한 곳에 사는 게 마치 겨울왕국에서 지내는 것처럼 신기하다. 입춘 날인데도 온통 꽁꽁 얼어붙은 산중에 사람들이 봄보다 먼저 찾아왔다. 새해 덕담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조그마한 한지에 입춘부 대신 ‘문 열면 봄’이라는 글귀를 써 나누어주었다. 창문을 열면 어느결에 다가온 봄을 만나듯이 마음을 열면 누구든지 벗이 되지 않겠는가.
봄 만나듯 마음 열면 누구든 벗
5초만이라도 감정 반응 멈추길
에는 추위 견뎌야 매화향 피어나
서른쯤 돼 보이는 청년과 부모님이 찾아왔다. “제 아들이 말을 못 해요, 제가 무슨 죄가 많아 이럴까요. 태어나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도 빠르고 말도 잘했는데 생후 1년 6개월 즈음에 심장 수술을 한 뒤부터 점점 말을 못하게 되었어요. 제가 더 답답해요. 저희가 떠나면 홀로 남을 아이가 걱정도 되고요.” 긴 세월을 한 가족이 깊은 겨울처럼 살아온 것이다. “우선 살아있음에 감사해야지요. 그동안 마음에 품었던 많은 일을 포기하거나 내려놓게 된 적도 있지요? 생각을 내려놓는 것도 마음공부에 해당이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더 생겼을 겁니다. 아이가 스승인 것이지요. 도(道)가 생겨난 것입니다. 또 아이에게는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이익도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에너지만큼 다른 곳에 장점이 생겨납니다. 새해부터는 가족이 함께 108배를 아침저녁으로 시작해 보세요.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알았으니 몸으로 내려놓는 수행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선(禪)의 문에 들어오려면 다섯 개의 문을 열어야 한다. 보시하고, 몸단속을 하고, 참고, 노력하고, 멈추고 바라보는 것이다.
첫 번째의 문은 베풀 줄 아는 것이다. 베푸는 마음은 내 것만을 챙기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할 때 아낌없이 돕는 마음이 생겨난다. 재물로, 지혜로운 말로, 용기를 북돋는 말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풀어야 한다. 나아가 나를 향한 칭찬마저 이웃에게 돌리는 것이다.
두 번째 문은 몸을 잘 단속하고 품위 있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몸으로 짓는 살생과 도둑질, 음행, 게임, 투기, 나쁜 말, 시기질투, 아첨, 성내는 것들을 삼가야 하고,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물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작은 잘못에도 부끄러운 마음을 내며, 뉘우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 번째 문은 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괴롭힘에 보복할 마음을 내지 않는다. 또한 팔풍(八風)이라 하여 이익과 손해, 헐뜯는 말과 찬사, 칭찬과 비난, 괴로움과 즐거움 등 마음을 흔드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는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조금이라도 건들면 반드시 보복을 하겠다며 늘 칼날을 세우고 사는 것 같다.
네 번째 문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선한 일에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스님들은 마음공부를 위해 새벽 서너 시경부터 일어나 가장 맑은 마음으로 예불을 한다. 동안거 기간에는 하루 네 번 8시간 내지 12시간씩 좌선을 한다. 잠깐 사이 분별과 망상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당서 『문예전(文藝傳)』에 이백(李白)이 젊은 시절 상의산에 들어가 공부하던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백은 공부를 하던 중 싫증이 나 포기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도끼를 바위에 가는 노파를 만났다. “무엇 하시느냐?”고 묻자 노파는 “바늘을 만들고 있네”라고 답했다. 다시 “어느 세월에 바늘을 만든다는 말입니까?”라고 묻자 노파는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라고 답했다. 이백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친 바 있어 다시 산을 올랐다는 고사이다.
다섯 번째는 멈추고 바라봄이다. 분별하는 마음과 망상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연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정심을 얻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을까를 묻고자 산중을 찾는 분들에게 “우선 멈추시라”고 답한다. 감정이 일어나 반응하는 시간인 5초 동안이라도 마음을 멈추고, 단 5분이라도 좌복에 앉으라고 권한다. 샤워하는 시간만큼이라도, 하루 30분쯤은 스스로 반조(反照)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거친 삭풍을 견디고 따뜻하고 밝은 봄으로 향할 수가 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겨울 추위보다 더 추울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봄을 맞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청아한 매화향도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