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파멸의 드로잉…재윤이 그려낸 '도리안 그레이' [D:PICK]

2025-04-07

입력 2025.04.08 08:36 수정 2025.04.08 08:5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SF9 재윤이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타이틀롤로 돌아왔다. 군 제대 후 첫 복귀작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건 '서편제'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인간이 아름다움과 젊음에 집착할 때 어떤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강렬하게 묘사했다. 재윤은 '아름다운 귀족 청년'의 외형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아름다움이 서서히 독으로 변해가는 내면의 균열을 깊이 있는 연기로 풀어내며 인물의 비극을 설득력 있게 이끌었다.

뮤지컬은 도리안이 자신의 초상화를 완성한 화가 배질 홀워드(김지철 분), 그리고 쾌락과 본능에 충실하라고 반복해 속삭이는 헨리 워튼(최재웅 분)을 통해 젊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욕망에 눈뜨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내면의 도덕성과 망설임 대신 헨리의 쾌락을 우선시하는 세계관을 받아들인 도리안의 선택은 사랑하는 연인 시빌 베인에게 잔혹한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도리안과의 이별 후 시빌 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도리안은 죄책감 지우는 선택을 하고, 아름다웠던 초상화는 변형되기 시작한다.

이후 도리안은 죄를 지어도 자신의 외모는 그대로이고, 초상화에만 타락의 흔적이 남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며 더욱 깊은 파멸로 걸어간다. 그와 대조적으로 배질은 도리안 안에서 끝내 인간적인 양심을 보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와일드는 맹목적으로 유미주의를 쫓는 도리안 그레이를 두고 "그를 망가뜨린 것은 바로 그의 아름다움이었고,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젊음이었다. 그 두 가지가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오점 하나 깨끗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가면일 뿐이었고, 그의 젊음은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했다"고 썼다. 재윤은 이 파멸의 흐름을 단선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사람을 단번에 믿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젊음의 순수함과 더불어 젊음의 열정적인 순결함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라고 도리안 그레이를 묘사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은 첫 등장부터 실현된다.

또한 초반의 순수함부터 후반의 자기 기만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낙차를 촘촘하게 설계하며, 인물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쌓아 올린다. 눈빛은 투명함에서 퇴폐와 공허로, 손짓은 주저함에서 단호함으로 바뀌고, 노래 역시 맑은 음색에서 점차 감정에 잠식당한 듯한 텅 빈 울림과 고통의 호소가 울려 퍼진다.

노래에서도 감정을 구체적으로 밀도 있게 쌓아 올린다.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영원하길 갈망하며 욕망의 문을 여는 곡으로 서정적인 선율 위에 '영원한 젊음'을 바라는 열망이 격정적으로 겹쳐지며, 곡 자체가 인물의 내면을 함축한다. 재윤은 이 넘버에서 감정의 첫 균열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후반부의 ‘또 다른 나’에서는 욕망과 죄의 누적 끝에서 자아가 붕괴되는 순간을 그린다.재윤은 이 곡에서 감정의 파열음을 밀도 있게 끌어올리며, 감정선의 끝을 넘긴 인물을 무대 위에서 낱낱이 드러낸다.

마지막 넘버 ‘도리안 그레이’는 모든 죄와 욕망의 끝에서 절망에 빠진 도리안이 결국 자멸을 택하는 장면을 그린다. 무너지는 도리안의 모습은 재윤의 목소리를 통해 절정의 비극으로 완성된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호흡과 소리와 침묵 사이의 간격이 감정을 더 증폭시켜 순수함에서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감정선을 개연성 있게 설계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유미주의를 찬미하면서도 그 극단이 낳는 허망함과 자기 파괴적 본질을 역설로 품는다. 심미주의, 쾌락주의, 데카당스가 결합된 이 서사는 현실과 양심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따라갈 때 인간이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자 경고다.

최근 SF9의 '러브 레이스'(Love Race) 활동을 통해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재윤은, 뮤지컬 무대에서는 다른 결의 얼굴로 관객과 마주했다. 도리안 그레이의 서늘한 내면, 차갑게 일그러져가는 욕망과 무너지는 양심을 절제된 연기로 풀어내며, 아이돌 무대 위의 에너지와는 또 다른 감정의 깊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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