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전 세계가 마주친 상황은 100년 전인 1920년대 후반과 많이 닮았다. 새로운 산업의 등장,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대량생산과 대량실업, 미래에 대한 불안, 보호무역, 세계 경제의 침체와 대공황, 극단적 감정의 정치, 그리고 결국 파시즘의 등장이다.
1911년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Taylor)가 주창한 과학적 관리법으로 효율적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산업과 철강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이 결과 미국 전역에 1920년 100만대이던 자동차가 1929년에는 2900만대로 늘어났다. 대량생산체제는 공정을 효율화해 단순반복 작업의 비효율적 노동력을 퇴출시켰다. 효율성으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 계급과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 계급 사이의 빈부 격차는 극심했다.
불안감과 감성 정치가 양극화 초래
정보 왜곡 개인 미디어로 확증편향
부족 정치와 파시즘의 길 경계해야
‘코어근육’ 중도층이 민주주의 지켜
이런 국내 사회경제적 문제를 정치가들은 감성적 정치로 해결했다. 그중 하나가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1930년 미 공화당이 발의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으로 유럽과 캐나다의 2만개 수입 상품에 60% 가까운 관세를 매겼다. 유럽도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전 세계가 보호무역에 빠져 대공황은 심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수입품에 60%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 1930년의 데자뷔처럼 보인다.
인류 문명이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사회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250년 전 미국이 발명한 삼권분립 민주주의가 미국에서조차 위태롭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 프랑스 마린 르펜 등 극우 정치가들이 부상한다. 지난달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은 2021년 선거의 두 배에 달하는 8.8%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지난 선거의 두 배에 달하는 20.8%의 지지를 받아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정치가 왜 이처럼 극단화하는가? 먼저 불안한 일자리의 미래와 소득 양극화에 따른 불만의 고조 때문이다. AI 도입으로 직업의 양태와 산업구조가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제조업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과 전문직 일자리도 도전을 받는다. 다보스 포럼은 2030년 일자리의 85%는 20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일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실업과 빈부 격차는 더 심화될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정보 유통수단의 변화이다. 정보생산이나 유통이 정부, 언론 등과 같은 공적 미디어가 아니라 개인 미디어인 SNS나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확산한다. 개인이 생산해낸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미시권력이 되어 활개를 친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매일 SNS를 통해 유권자와 소통하고 기존 언론도 이를 기반으로 뉴스를 제공한다. 최고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거대권력 대통령까지 유튜브 정보에 의존할 정도라고 하니 통제되지 않은 미시권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런 미시권력이 생산하는 무책임한 정보가 알고리즘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회는 확증편향에 쉽게 빠진다.
새로운 미디어는 손쉽게 대중을 감성 정치에 몰아넣는다. 1930년대에도 라디오가 등장해서 정치동원의 수단이 바뀌었다.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라디오를 대중 선동 도구로 활용해 나치 이념을 전파했고, 히틀러는 국민 라디오(Volksempfanger)를 통해 연설을 생중계함으로써 국민감정을 극단적으로 고조시켜 나치즘에 의한 전제 정치를 강화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취임과 함께 보급된 라디오를 활용해 매주 노변정담 연설로 대공황 시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결과 그는 12년간 네 번의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며 정치적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정치철학자 제이슨 스탠리(Jason Stanley) 예일대 교수는 『어떻게 파시즘은 작동하는가: 우리와 그들의 정치』에서 그들과 우리를 갈라놓는 편가르기식 부족 정치가 확산되면 대중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시스트 정치에 빠지면 정보에 기반한 뉴스나 이성적 토론보다는 스타성을 가진 강력한 정치가의 유령 메시지를 따르게 된다”고 한다.
SNS나 유튜브 메시지에 우리 국민들의 일상이 빠져들고 있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하루 2시간 이상 유튜브를 이용한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미시권력인 개인 미디어가 산출하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감성 정치는 강화되고, 탄핵 정국에 우리와 남을 가르는 부족정치가 거리로 뛰쳐나와 극에 달하고 있다.
이제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유권자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마치 우리 몸을 지탱하는 데 코어 근육이 중요하듯 중도 유권자층이 강해져야 한다. 다수 중도층이 극단적 소수의 감성 정치에 휩쓸리지 않아야 정치가들이 쉽게 포퓰리즘이나 파시즘 정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중도층이 흔들리지 않게 지식인과 사회원로들의 책임도 막중해지는 시기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