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2000년 2월 오산 공군기지에 부임해 3년간 복무한 이후 중위로 전역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경기도 오산에 있는 기지’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행정구역상 오산이 아니고 평택에 소재했다. 원래는 ‘송탄’으로 불리던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평택시와 평택군, 그리고 송탄시가 합쳐 지금의 평택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송탄 기지’나 ‘평택 기지’가 아니고 오산 기지로 불리는 것은 미군이 기지를 건설하던 1950년대 당시의 행정구역은 화성군 오산면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 입장에선 화성이나 송탄, 평택과 비교해 ‘오산’(OSAN)이 철자가 간단하고 발음하기에도 편하니 그대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기지명이 지명과 배치되다 보니 오산과 평택 둘 다 불만이다. 오산시는 국내에서 반미 감정이 치솟을 때마다 미 공군이 주둔한 오산 기지가 타겟이 되곤 하니 “기지 이름에서 오산을 빼달라”고 요구한다. 반면 오산 기지는 물론 주한미군 사령부 및 유엔군 사령부가 주둔한 캠프 험프리스도 끼고 있어 ‘한·미 동맹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택시는 “현 지명에 맞게 기지명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미군으로선 달랑 알파벳 네 글자인 오산과 달리 열 글자나 되어 지나치게 길 뿐더러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평택’(Pyeongtaek)을 기지명으로 택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6·25 전쟁 당시 주한 미 육군 제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대장의 외아들 밴플리트 주니어(미 공군 대위)가 1952년 4월 북한 지역에서 폭격기를 몰고 공습 임무를 수행하던 중 추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아들이 전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에서 밴플리트 장군은 “내 아들 찾는 것보다 중요한 작전이 많다”며 부하들에게 시신 수색 중단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12년 오산 공군기지 내부에 밴플리트 주니어의 흉상이 세워졌다. 한국을 찾는 미국 대통령의 일정이 보통 미 공군 1호기, 이른바 에어포스원의 오산 기지 착륙으로부터 시작되는 점에서 보듯 오산 기지는 한·미 동맹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이 지난 21일 오산 공군기지를 압수수색했다. 오산 기지는 미 공군은 물론 한국 공군 부대도 여럿 주둔하고 있다. 특검팀은 윤석열정부 시절 우리 군이 평양에 드론(무인기)을 침투시킨 정황과 관련해 한국 영공 전체를 감시하는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이 함께 관리하는 오산 기지에 특검팀이 드나들며 미군 측에는 사전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특검팀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나,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진영에선 “미국 행정부와 주한미군에 대한 모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관계를 감안해 외교 라인을 통한 ‘조용한 봉합’이 절실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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