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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기사에는 결과만 나옵니다. 누가 범인이고, 왜 범행을 저질렀으며, 실형 몇 년을 받았는지. 하지만 그 몇 줄을 위해 형사들은 며칠, 때론 몇 달도 버팁니다. 그렇다면 형사들의 수사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강력계 25시’는 현장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사건 발생 시점은 2022년 4월 18일 저녁 7시40분쯤.
퇴근 중이던 임상도 형사는 선배로부터 “야, 간석동에서 누가 건물에 불 싸지른댄다. 주소 줄 테니까 당장 튀어 와”라는 호출 전화를 받았다. ‘하필이면 비번 전날에…’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상급 기관인 인천경찰청이 나섰다는 설명이 뒤따르자 곧바로 핸들을 꺾었다.
과연 현장은 대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지구대에서 철제 펜스와 노란 선을 두르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길마다 지구대 경찰차가 즐비한 가운데 남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의 콤비버스, 남동소방서의 펌프차와 구급차가 대기 중이다. 거기다 경찰특공대 전술 차량도 응원을 나와 있다. 현장에 배치된 경력만 80명이다.
임상도 형사는 차에 구비해 둔 협상 요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현장으로 들어갔다. 본 소속은 논현경찰서 강력4팀장이지만 대테러위기협상 요원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후자는 비상설 조직인 탓에 인천 전역이 관할이다. 이런 유의 사태가 터지면 어디든 출동해야 한다.

정보계장이 보고했다. “농성범은 4명으로 확인됩니다. 주범은 건물 6층의 고시텔 원장 이철건(52·가명)이며, 종범은 고시텔에 기거하던 노금희(67·가명), 50대 김모 씨 둘입니다. 이철건의 주장에 따르면 7년 전 급전이 필요한 친구에게 6층 부동산 명의를 담보용으로 빌려줬지만, 최근 친구가 허락도 없이 명의를 건설사에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건설사는 재건축해야 하니 입주민들을 내보냈고요. 결국 자신은 보상비를 받아야 하는데 빈손으로 쫓겨날 처지가 됐으니 억울해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이철건의 요구 조건은 자신의 보상비 8억원에 종범들의 이주비 각 2000만원이었다. 아울러 사건의 발단이 된 친구를 구속 수사하고, 일찍이 금전 문제로 신고했음에도 별 대응 없이 자리를 떠난 지구대 경관들을 징계하라는 것도 조건에 포함됐다.
“폭파는요? 실제로 그럴 만한 장비가 있답니까?” 누가 묻자 정보계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가스통이 있다는 농성범의 진술뿐입니다. 내부 상황은 확인이 어렵습니다.”
회의 결과 일단 협상팀이 자수하도록 설득하되 기회를 봐서 형사들이 진압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됐다. 건물 폭파 가능성은 현재로선 미지수다. 모든 경우의 수에 만전을 기해야 할 테지만 그렇다고 저자세로 끌려다니며 농성범들에 우위를 넘겨줘선 안 된다.

사건 발생 이튿날인 19일 새벽 2시쯤, 임상도 형사를 비롯한 강력팀이 진입을 시도했다. 1층 현관을 지나 비상계단을 올라간 끝에 그들이 6층에서 마주한 것은 적치물이 겹겹이 쌓인 바리케이드였다. 가구에 쓰이는 원목 자재와 침대 매트리스, 부서진 책상, 소파, 철사 따위가 얽히고설켜 단단한 방어벽을 형성했다. 그때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남성 하나가 얼굴을 쑥 내밀며 “경찰이야?” 하고 물었다.
종범인 50대 남성 중 하나다. 환자처럼 뺨이 움푹 패었고 이마와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임상도 형사는 농성범들 간의 연대의식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고 직감했다. 사실 이철건의 요구조건에서 힌트가 있었다. 성공 시 자신은 8억원을, 나머지는 2000만원을 챙긴다. 이미 거기서 모두가 한마음일 수 없다는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임상도 형사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작게 말했다. “선생님, 전 협상 요원입니다. 체포하러 온 게 아니라 선생님과 대화하고 싶어서요.”
“이 마당에 대화는 뭔 대화?”
“제가 볼 때는 선생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상황이 벌어진 거로 보입니다. 괜찮으시면….”
상대는 손사래를 치고는 “그냥 빨리 나가”라고 했다.
“제가 볼 땐 그래요. 손전등으로 제 유니폼 비춰봐요. 협상 요원이라고 돼 있죠? 여기선 제가 경찰들을 지휘합니다. 원하시면 다 물리칠 수 있어요. 그걸 바라세요?”
“그래, 다 나가라니까.”
하지만 남성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 뒤의 누군가를 의식하듯 자꾸 고개를 돌린다. 대화하는 모습을 주범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건가.
“좋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죠. 하지만 선생님, 저는 다시 올 겁니다. 뭐 필요한 건 없으시고요?”
“…배고프지.”
“안에 음식이 없어요?”
“몰라. 이철건이가 어디 숨겨둔 거 같은데, 가끔 입에서 라면 냄새도 나고. 근데 우린 안 챙겨줘.”
그러고 나서 남성은 돌연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고작 이주비 50만원으로 나가라는 건 너무한 처사다, 기껏 살 곳을 찾았는데 또 어디로 가란 거냐, 근데 이철건이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몇천만원은 우습게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등등.
“그럼 주모자는 이철건이고 선생님은 오늘 하루 여기 서 계신 것뿐이네요?”
“그렇지.”
“저와 내려가서 배부터 채우시죠. 그래야 선생님이 안전합니다. 아직 피해자도 안 나왔고 다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그 순간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웬 남성이 나타나 플라스틱 통에 든 휘발유를 형사들에게 끼얹었다. “안 꺼져, 이 새끼들아. 헛짓거리하면 그냥 불태우고 다 같이 뒈지는 거야.”
이철건이었다. 그는 라이터를 켜고는 형사들에게 휙 던질 것처럼 시늉을 해 보이며 악다구니를 썼다. 임상도 형사는 철수를 지시한 뒤 내려가면서 후방을 살폈다. 종범은 멍하니 선 채 빠져나가는 형사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1차 진입 시도 후 40분이 지났을 때 종범인 50대 남성 2명이 건물을 빠져나와 자수한 것이다. 그들은 구급대에 인계돼 건강 상태를 진료받고 있다. 이후엔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지휘실로 날아든 사진 한 장이 지휘실의 공기를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고시텔 내부에 50㎏ 가스통 5대와 20㎏ 가스통 2대, 다량의 부탄가스와 시너까지. 건물 하나는 물론, 주변 일대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인천 간석동을 위험에 빠트릴 뻔한 폭파범, 심지어 그 주장은 거짓이었는데…. 폭파 미수사건의 충격 전말,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력계 25시’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천 간석동 폭파 미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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