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강국’ 英의 추락…런던 떠나는 기업들, 흔들리는 파운드화

2025-10-06

‘금융 강국’으로 불리던 영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으로 평가받던 수도 런던은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35년 만의 최저 실적을 기록하며 금융 허브로서의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파운드화 역시 국제 외환시장에서 위안화의 거센 추격을 받으며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런던의 IPO 규모는 총 2억 4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69% 급감했다. 이는 35년 만의 최저치다. 런던이 전통적인 상장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 최대 규모 런던 상장은 회계법인 MHA가 4월 진행한 IPO로 9800만 파운드(1억 3000만 달러) 규모다.

부진이 이어지면서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주요 IPO 시장 순위에서도 런던은 23위로 밀려났다. 멕시코(19위)와 오만(22위)에도 뒤처지는 순위로 선진 금융시장으로서의 체면을 구긴 셈이다. 블룸버그는 “물론 런던은 외환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주식 시장보다 훨씬 더 큰 규모”라면서도 “이 같은 상황에서도 영국이 (IPO 분야에서) 상위 20위 안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큰 문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불과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런던의 신규 상장은 유럽 전체 자금조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비중은 3%에 그친다. 런던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고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상장을 미루거나 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상장지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상장이 급감하는 가운데 런던을 떠나는 기업들은 늘고 있다. 해외 송금 서비스 업체 와이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로 상장지을 이전하기로 했으며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도 기존 미국예탁증서(ADR) 대신 보통주를 직접 뉴욕에 상장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자본이 런던을 떠나 미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다만 런던의 기업가치 하락은 사모펀드(PEF)들의 적극적인 인수 기회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렌베르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레너드 켈러는 “기업가치가 낮을 때는 신규 상장을 미루는 경향이 있고 이미 상장된 기업은 인수 타깃이 되기 쉽다”며 “런던의 저평가 현상은 사모펀드에는 매력적인 기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런던의 금융 중심지 지위가 약화되는 배경에는 유럽 내 경쟁 심화와 아시아 및 중동 신흥국들의 부상이 있다. 실제 올해 블룸버그 IPO 순위에서 싱가포르와 멕시코는 각각 9위와 19위로 올라서며 런던을 추월했다. 두 시장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장 활동이 미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부동산신탁(리츠) 확대와 신흥국 자금 유입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런던 증시가 활력을 잃은 가운데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위상도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세계 외환 거래에서 파운드화의 점유율은 10.2%로 2022년 12.9%에서 하락했다. 반면 중국 위안화는 7.0%에서 8.5%로 상승하며 양국 통화 간 격차는 불과 1.7%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위안화의 약진은 중국 정부가 장기간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성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위안화 결제 네트워크 확충을 통해 달러 중심 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주력해왔다. 싱가포르은행의 외환 전략가 모 시옹 심은 “중국의 정책 추진이 성과를 거두며 위안화가 빠르게 파운드를 따라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국경 간 자본 이동 제한과 같은 구조적 제약으로 위안화가 미국 달러의 패권을 흔들기까지는 상당한 큰 도전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런던 증시의 위축과 파운드화의 약세는 영국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를 상징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때 세계 금융의 심장으로 불리던 런던은 이제 신흥시장과 미국 자본의 공세 속에서 다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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