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수필가
새해 들어 여러 곳에서 인사를 받았다. 주로 건강 하라는 덕담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때가 됐다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는 “부자 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가 대부분이었다. ‘에너지는 집중하는 곳으로 흐른다. 어떤 단어에 힘을 실으면 에너지가 그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냈다.’ 책을 읽다 가슴에 와 닿았던 글이다. 곧 긍정의 힘이다. 이후부터 뜻을 세우면 한곳으로 마음을 모으게 된다.
매번 어떤 답을 보낼까 고심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실만 한 답에 궁하다. 방금 우려낸 향기로운 차 맛 같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통상적인 인사말은 썩 내키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카톡보다는 음성 통화로 대신한다. 온기를 담은 밝은 음성이 더 끈끈하고 친밀감이 든다. 교감이 깊으면 목소리로 그 사람의 건강이나 기분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종일 전화벨 소리 한번 울리지 않는 날이 있지만, 정적을 깨는 카톡은 끊이지 않는다. 글자로 하는 소통이자 일종의 놀이 문화로 친구나 단체에서 불러내는 소리다. 내가 같은 무리 속에 소외되지 않았다는 뜻이나, 때로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유익한 것, 몰라도 될 것, 정보에 어두운 내게 눈이 번쩍 띄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얻기도 한다.
연말 즈음에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의 이름을 넘겨 보며, 그와 맺게 된 인연이 무엇이었는지 깊이를 가늠해 보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귀히 여길까. 아니면 그저 그런 관계일 뿐일지. 알 수 없는 상대의 속내가 궁금했었다.
오랫동안 교류가 소원했던 사람을 이젠 비워내려고 한다.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관계를 지우는 건 내 한 시절이 사라지는 것이다. 고마워 애틋한 사람이며 이런저런 끈으로 맺어졌지만, 인연도 시절 따라 변한다. 한때 더없이 좋은 관계였으나 이제는 잊히면 잊히는 대로 사는 것도 순리다. 한 번 정을 주면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외곬이라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래 전 몇 가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뒀었다. 첫째는 멀리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자는 소박한 계획이었다.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게 우정인데 관계가 소원해질까 두려웠다. 그때는 쉽게 실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자주 만나야 함께 나눌 얘깃거리도 풍부하고 정도 깊어지는데 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산다.
계획도 내 그릇에 어울리게 담아야 가능하다. 분수에 넘치면 내 몫이 아니다. 그로 인해 상실감이 커 평정심을 찾기 어렵다. 자신이 만든 올가미에 묶여 종종거리지 말고 순간순간 충실하게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처럼 건강을 챙겨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역 버킷리스트를 권했다. 새해 첫 진료 때 하고 싶은 일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며 한 충고다. 일보다 자유롭게 사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앞으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둬야 할지를 살펴야 할 시점이다. 올해는 소소한 일들이 기쁨이 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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