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맞닿은 도시들.
그런 스위스라서 특별했던 도시 여행자의 하루.
●Around Lugano
스위스 남부의 루가노는 16세기 초 티치노(Ticino)주로 편입된 후에도 여전히 이탈리아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이 땅은 삶의 경계에 선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다. 태어난 독일을 떠나야 했던 헤르만 헤세와 국경의 밀수꾼으로 살아남은 이탈리아 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Hermann Hesse
자아 탐구의 대가가 은둔한 이유
헤르만헤세뮤지엄
사진 속 그는 샤프하고 끌밋했다. ‘차도남’ 혹은 학자의 얼굴을 가진 헤르만 헤세(1877~1962년)는 어쩌다 루가노 외곽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Montagnola)에서 43년을 살았던 것일까? 그를 끌어들인 것은 우연히 방문했던 카무치 저택의 고풍스러움이었다. 저택의 부속 건물 앞에서 만난 해설사 루실라 여사가 노벨문학상 수상(1946년)이라는 영광에 가려진 헤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화주의자로 전쟁을 비판했던 헤세는 독일의 핍박을 피해 스위스 망명을 결정했다. 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몬타뇰라의 러시아풍 저택에 세를 든 헤세는 생의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이곳에 머물렀다. 카무치 타워를 개조한 뮤지엄은 여러 층의 작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었다. 헤세의 수채화는 전시실의 노란 벽과 잘 어울렸고, 시그니처가 된 동그란 안경과 타자기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헤세는 파리, 뉴욕, 도쿄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렸던 화가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10대의 나는 <데미안>의 저자 헤세보다 번역자인 전혜린에 더 매료되어 있었다. 헤세와 전혜린을 공통으로 괴롭힌 것은 우울증이었다. 어려서부터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던 헤세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을 받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비운의 천재 전혜린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31년의 생을 스스로 멈췄고, 헤세는 85세까지 비교적 장수했다.
헤세의 무덤도 몬타뇰라에 있다. 걷기를 즐겼다는 그의 산책 루트를 따라 버스로 두 정거장쯤 걸어가면 헤세가 잠든 생 아본디오 교회 묘지에 도착한다. 화려한 장식의 무덤 사이 무심하게 놓여 있는 바윗덩어리 묘비 위에 그의 손 글씨체가 덤덤하게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었다. HERMANN HESSE, 2. JUL. 1877~9. AUG. 1962. 기억 속에서 17살의 나를 괴롭게 했던 독일어 교과서를 펼쳤다. 아우프 비더젠(또 만나요), 헤르만씨.
●Gandria
밀수의 길, 올리브의 길
간드리아 마을
100년 전 골목의 모습이 보존된 마을, 밀수꾼들이 살던 마을. 이 두 가지 키워드에 이끌려 촉촉한 비를 맞으며 간드리아(Gandria)행 배를 탔다. 루가노에서 출발한 25분간의 보트 유람은 루가노호숫가의 산허리 풍경을 담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간드리아 산책의 시작점은 마을 선착장, 종착점은 언덕 중턱의 버스터미널이었다. 비수기에 접어든 간드리아는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한여름 호수 빛이 가득 채워진 마을의 아기자기한 정서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축대와 담 사이 골목길을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돌아서도 탁 트인 호수가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사연이 없는 백 년 마을이 있을까. 간드리아는 국경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온 난민들은 밀수를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국경 수비대를 속이기 위해 고안한 1인용 잠수함, 헝겊을 싸매 소음을 줄인 신발 등은 절박함이 만든 발명품이다. 그 흔적들은 간드리아의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스위스세관박물관(Swiss Customs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여전히 국경 감시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박물관은 하루에 1번 운영하는 배로만 갈 수 있다.
국경도시 특유의 소외감이 남아 있는 간드리아는 끈끈한 마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밀수의 흑역사를 지우고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간드리아와 이웃 마을 카스타뇰라 사이를 잇는 3.5km의 ‘올리브 나무 트레일’은 올리브 나무가 좋아지는 생태 트레킹 코스다. 가을이 되면 마을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짜서 공동으로 판매한다.
막배를 타고 왔으니, 루가노로 돌아가는 방법은 버스다. 마을 정류장의 회차 공간이 좁아서 일반 버스는 가당치 않고, 미니버스조차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머리를 돌렸다. 100년의 고립을 견뎌 낸 마을과 골목이 루가노로 돌아가는 내내 아릿했다.
간드리아 가는 법
가장 빠르고 풍경까지 즐기는 방법은 보트를 타는 것이다. 루가노 선착장(Lugano Centrale)에서 그린라인 배를 타면 간드리아까지 25분 정도 걸린다. 버스 이동도 쉽지만, 낮에는 운행 간격이 길어지므로 미리 확인할 것.
●Luzern Run Trip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도시 루체른에서 드디어 러닝 벨트와 운동화를 꺼냈다. 운동복을 입고 나서면 신기하게도 온통 러너들만 눈에 들어온다. 낯선 도시지만 어디로 뛸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 명이라도 우연히 발견한 러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도시에서 가장 경치 좋고, 걷기에도 좋은 길에 접어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강과 호수의 경계에서
루체른 시티 런
루체른에 도착하자 짙은 안개가 마중을 나왔고, 거의 이틀 내내 고집스레 호수를 잠식했다. 이럴 때 가까운 리기산(1,800m)이나 필라투스(2,210m)에 올라가면 멋진 운해를 볼 수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하지만 날이 흐리다고 낙담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달리기가 있으니까!
루체른의 관광 1번지, 산책 1번지, 러닝 1번지는 공식 명칭이 ‘피어발트슈태터(Vierwaldstattersee)’인 루체른 호수 주변이다. 이 호수와 로이스(Reuss)강이 만나는 곳이 도시의 중심 지역이다. 루체른의 랜드마크인 카펠교에서 출발하니 호숫가를 따라 스위스교통박물관까지 편도 2.2km의 무난한 달리기 코스가 그려졌다. 모닝런이 좋은 건 강아지 산책, 낙엽 청소, 등교하는 학생 등의 일상이 만져지기 때문. 충분히 몸이 더워지고, 만추의 낙엽과 어우러지는 호수 풍경이 살짝 지겨워지면 이른 감이 있어도 반환하는 것이 현명하다. 돌아가는 길에 옆길로 새는 즐거움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같은 코스를 왕복하는 대신 살짝 ‘업힐’을 맛보고 싶다면, 르네상스 양식을 잘 보여주는 호프교회(성 레오데가르 성당)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근처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빈사의 사자상이다. 풀코스를 마친 마라토너보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사자상을 보고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자상’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 <방랑자>에서 발견한 원문의 뉘앙스는 사뭇 달라서, ‘루체른의 사자상은 어느 곳에 있어도 감동적이지만, 루체른에 있을 때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크 트웨인에게 방랑자는 ‘저기가 아닌 여기’의 가치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12세기부터 도시를 보호했던 무제크 성벽 아래의 공원 테라스에서 루체른의 평화로운 아침 풍경을 조망하고 내려왔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이 있는 다리인 카펠교는 로이스강을 비스듬하게 건너면서 호흡을 정리하는 구간이다. 시계의 달리기 모드가 5.5km를 감지했을 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자연스레 러너 모드에서 방랑자 모드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 걸었던 루체른 여행이 두 시간의 달리기에 복습하듯 고스란히 담겼다.
루체른 시티 런 코스
총 길이 5.3km
가는 길: 2.2km, 카펠교 출발 → 루체른호수 산책로 → 스위스교통박물관(반환 지점)
오는 길: 3.1km, 스위스교통박물관 → 호프교회 → 빈사의 사자상 → 무제크 성벽 → 카펠교 도착
글·사진 천소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