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바깥바람을 쐴 일이 많았던 이번 겨울에도 한국 젊은이들의 아이스 커피 사랑은 꾸준하다. 하지만 다른 K-유행어에 비해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라는 용어는 영어로 번역되거나 외국에 알려지는 것이 느린 편이다. 이런 추위에도 웬만한 카페에서는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뜨겁게 아니면 차갑게 마실지 바리스타가 확인차 묻는 것은 한국 아니면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기후 요인과 더불어 여러 가지 설명이 존재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화강암 지반으로 걸러진 깨끗한 지하수를 끓이지 않고 먹을 수 있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보인다.) 카페의 조용한 분위기 속, 뜨거운 음료를 입으로 살살 불어 가며 마시는 소리는 따스한 온기를 충전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차가운 얼음이 컵 속에서 부딪치는 소리는 겨울의 생기를 더해준다. 이러한 소리들은 카페 안의 조용한 공기를 찬란하게 장식하며, 손님들은 이 소리들 속에서 자신만의 순간을 찾는다.
이번 글에서는 물을 따르는 소리를 다루고자 한다. 카페에서 주문하는 음료는 티포트와 함께 나오는 차를 제외하면 카운터 뒤에서 잔에 따라지기 때문에 가까이서 그 소리를 자세히 듣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에 대다수의 음식점에서는 자리에 앉으면서 냉수가 채워진 병이 주어진다. 같은 장소에서 찬물과 뜨거운 물을 따르는 소리를 탐청(探聽)하며 비교할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물의 온도에 따라 소리가 약간씩 달라짐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지난 십수 년 동안 이루어진 대부분의 연구는 체감되는 소리의 차이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나간다. 차가움, 뜨거움과 관련된 단어나 상황이 미리 암시되면 그에 따라 물이 따라지는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기간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이 가진 장비를 사용한 실험을 일반에 알릴 통로가 많아졌고, 이를 통해 물을 따르는 소리가 온도에 따라 정말로 달라지는지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레 인터넷상에 공유되기에 이르렀다. 장비의 정밀도와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는 정도가 실험자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통제하기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백 가지 비교실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질적인 결과가 있다면 차가운 물이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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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소리는 양적으로 어떻게 표현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소리의 파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글로는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위의 QR코드로 연결되는 웹페이지에서 소리를 재생해 보자. 기본 주파수(음정)는 같지만 한글로는 순서대로 “후~”, “뚜~”, “뿌~” 정도로 구별해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맨 앞의 소리가 단순조화 운동의 기본 단위인 사인(sine) 곡선으로부터 발생시킨 것으로, 셋 중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로 들린다. 우리가 주파수로 분해해서 인식하는 음색의 가장 순수한 (하나의 주파수만을 담은) 형태이기도 하다. 나머지 소리들은 어딘가에 걸리적거리는 효과가 포함된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고 할 때 그 파형에는 도표에서 보이듯 각이 진 소리의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각이 진 파형은 결국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뛰는 소리가 많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파수가 높은 파형과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앞서 말한 실험의 결과는 차가운 물을 따르는 소리가 뜨거운 물에 비해 높은 주파수대를 담아서 우리 고막을 진동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에서 녹음한 소리를 분석한 아래 그림의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에서는 차가운 물을 따를 때 높은 주파수대(각 도표에서 윗부분)에 연두색과 노란색이 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온도에 따라 물 따르는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이 단지 심리학적인 이유 (”기분 탓”)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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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을 좀더 양적으로 분석하면 대표적으로 물을 담는 용기의 모양에 따른 반향, 물의 온도에 따른 점성(끈끈한 정도) 변화, 증발로 인한 수증기를 들 수 있다. (일상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워도 물 역시 ‘흐르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점성이 존재한다.) 실험 조건으로 물을 담는 용기를 통일하였다고 하면 결국 점성 변화와 수증기 사이에서 주 원인을 찾게 되는데, 물은 뜨거울 때보다 차가울 때 점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점성이 높으면 따라지는 물줄기가 잘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발생시키더라도 더 긴 파장의 (낮은 음정의) 영역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차가운 물을 따르는 소리가 더 고음이라는 관측 결과는 뜨거운 물로부터 증발되는 수증기의 역할이 더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지는 물줄기의 소리가 어떤 원리로 수증기에 부딪혀 고음을 잃게 되는지는 아직 정밀하게 실험되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직관적으로는, 대기 중에서 물 분자가 회전하는 속도, 그리고 이로 인해 근처의 다른 기체의 분자로 운동 에너지를 전달하는 빈도가 사람의 가청(可聽) 주파수대의 고음 부분과 일부 겹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https://www.usjournal.kr/news/data/20250214/p1065538801440979_788_thum.jpg)
이렇듯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작은 소리들에도 복잡한 물리적 원리와 심리적 인식이 담겨있고, 이러한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우리의 집중 상태나 순간의 기분이 영향을 받는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따를 때 미묘한 음색의 차이는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지 보여주며, 신경과학 분야가 이러한 감각 형성의 원리를 원자 수준에서 이해할 날이 있을지는 앞으로도 미지수다. 그러나 단순한 물 한 잔에서도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지각이 교차한다는 사실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도 깊은 의미와 연결성을 부여하는 인간의 습성으로 인해 과학 연구의 방향과 해석이 결정된다는 점도 상기시켜 준다.
양창모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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