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후 ‘K팝 댄스’ 수업이 열린 한양대 강의실. 블랙핑크 제니의 ‘like JENNIE’가 울려 퍼지자 30명의 학생들이 대형 거울 앞에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거나 곡 분위기에 맞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강사가 수업 도중 “빨라지지 마세요”라고 외치자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동작을 늦추기도 했다. 학생들의 국적은 미국, 홍콩,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네덜란드 등 총 8개국. 수업에 참여한 싱가포르 출신 탄 슈겍 씨는 “12살 때부터 소녀시대를 좋아했는데 한국에서 춤을 배우고 한국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20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들이 방학을 이용해 외국인 학생들에게 다양한 수업과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여름 캠프’의 인기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K콘텐츠 열풍에 따라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한국에서의 취업과 정착까지 고려하는 외국인 2030세대도 늘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 2023년 1098명이었던 국제여름학교 참가자는 올해 1710명으로 55.7% 증가했다. 연세대 역시 같은 기간 약 2100명에서 2200명으로 참가자 수가 늘었다. 학생들의 국적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고려대 국제하계대학에는 2023년 50개국 학생들이 참여했으나 올해는 80개국으로 확대됐다. 학생들은 약 4주 동안 한국어뿐만 아니라 경제·공학·사회과학 등 여러 수업을 듣고 문화를 체험하며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름 캠프의 수요가 급증한 배경에는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이 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타고 ‘오징어게임’이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등 한국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국내 문화를 직접 경험하려는 외국인 학생이 늘고 있다. 태권도, 한식 요리, 야구 관람 등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각국의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요인이다. 한양대에서 수업을 듣는 빅토리아 씨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데몬 헌터스’를 보고 K팝 댄스 수업을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오징어 게임’에 나온 전통놀이도 인상 깊게 봤는데 한국 유적지를 방문해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각 대학은 외국인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해 매년 새로운 강좌와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고려대는 올해 하계대학에서 △한국 영화와 사회 △한자, 그 언어로의 여정 등 15개 강의를 신규 개설했다. 연세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수업을 열었다. 김용찬 연세대 국제처장은 “국제하계대학 커리큘럼을 학생의 수요에 맞게 구성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수한 국내외 학생들이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강의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뿐만 아니라 인턴십 등 국내 취업에 대한 외국인 학생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양대가 국내 스타트업과 연계해 운영하는 단기 인턴십 프로그램의 지원자는 지난해 여름 3명에서 올해 올해 17명으로 크게 늘었다. 부산대는 여름 캠프에서 현대차 울산공장과 영화시설 등 지역 산업 현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부산 소주 공장에 방문한 리투아니아 출신 고다 씨는 “소주 제조 과정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어 흥미로웠다”며 “가능하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머무르며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외국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데일리케이션(일상+휴가)’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한국 방문이 장기적인 정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비자 확대 등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