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자율주행 농기계, 매년 기술발전에도 영농현장 적용은 ‘미비’

2025-01-23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농업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자율주행 농기계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영농 현장에서 이런 기계를 활용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민신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자율주행 농기계 개발 현황과 현장 도입 실태를 짚어보고 적용 확대 방안을 모색한다.

“자율주행은 무슨…. 아직은 사람이 하는 게 속 편하고 더 빨라.”

현장 농민들에게 자율주행 농기계를 써봤는지, 혹은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쉬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왜 그럴까. 농민·업계·정부가 자율주행 농기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이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내 자율주행 농기계 시장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나 아직은 영세한 편이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자율주행 농기계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188억2000만원으로 추산된다. 2021년(73억1700만원)에 견주면 2년 새 2.6배 늘었지만 절대적 규모 자체는 크지 않다.

기종도 한정돼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기종은 주로 트랙터·이앙기 같은 대형 농기계에 국한돼 있다. 더욱이 시중 자율주행 농기계는 엄밀히 말해 자동조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조향은 사용자가 시작점과 끝점을 입력하면 두 점을 연결한 경로를 자동으로 주행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보급된 기술은 흔히 상상하는 완전 무인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트랙터에 부착하는 작업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고, 이앙기는 모판을 공급하는 작업자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싼 가격도 농민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에서 만난 이재식씨(64)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구매하려고 알아봤는데 1억원은 우습게 넘는 것을 보고 1000만원 안팎의 자율주행 키트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며 “트랙터에 부착하면 자동조향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승진 아그모 대표는 “자율주행 키트로 자동조향은 가능하지만 제조사 협조가 없으면 전·후진이나 작업기 제어가 불가능하다”며 “자율주행 트랙터·이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인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마력·옵션이 제한적이어서 키트를 찾는 농민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아세아텍 등 몇몇 업체가 고속분무기(SS기) 등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할 대상을 넓혀가고는 있다. 하지만 판매 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아세아텍 관계자는 “어렵게 자율주행 고속분무기 개발에 성공했지만 자율주행 농기계 효용성에 대한 농가 인식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아선지 판매가 부진한 편”이라면서 “제품 성능 개선과 홍보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속분무기 다음으로 상용화 1순위로 꼽히는 자율주행 운반로봇도 양산단계로 접어들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상황이다. 농기계 업체 ‘하다’는 농촌진흥청의 기술을 이전받아 온실용 운반로봇의 실증 연구을 하고 있고, 대동은 올 상반기 노지에서 사용 가능한 자율주행 운반로봇을 출시할 예정이다. 온실용 운반로봇 실증사업에 참여한 토마토농가 김태훈씨는 “매년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체감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온실 베드 간격(1m)을 고려하면 기기가 좀더 작고 가벼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진 서울대학교 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노지·시설 원예작물은 수도작에 견줘 재배규모가 작아 농가 구매력이 약한 데다 재배지 또한 자율주행 농기계를 사용할 만큼 표준화돼 있지 않다”면서 “업계·정부는 자율주행이란 달콤한 표현에 매몰되지 않고 영농 현실을 직시해 연구·개발·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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