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 ⌛ 기다릴 수 있겠어요?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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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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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려고 4년간 고군분투한 남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산재 결정을 받아들기까지 이 남성이 바친 시간과 노력을 보며 웬만한 사람이라면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았고,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아내의 죽음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한 사건의 재해적 성격을 입증한다는 것이란 정말 길고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일하다가 '직업병'을 얻은 경우 산재 인정은 더욱 지난하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김지환 기자의 기사를 읽고 대화하기에서 다시 만나요.

산재 조사, 평균 635일 걸린다

2024. 9. 23. 김지환 기자

근로복지공단이 지난해 결론이 난 산재 역학조사 결과를 조사 기관으로부터 회신받는 데까지 걸린 기간이 질병 건당 평균 634.6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역대 최장 소요기간이다. 역학조사 장기화로 조사 중 사망한 노동자는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40명을 넘어섰다.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양대 역학조사 기관인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처리기간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해 결론을 내고 근로복지공단에 회신한 역학조사에 걸린 기간은 평균 952.4일로 2018년(385.9일)보다 2.5배가량 늘었다. 직업환경연구원의 경우 지난해 588.1일로 2018년(211.8일)보다 2.8배가량 늘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등 시민단체가 지난 4월 1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발병과 관련해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도현 기자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산재 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살피는 재해조사를 하고 필요 시 역학조사를 의뢰한다. 신규·희귀 직업병 및 대규모 역학조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나머지 일반적 역학조사는 직업환경연구원이 맡는다.

두 기관의 역학조사 기간을 종합한 수치를 연도별로 보면 2017년 178.4일, 2018년 232.8일, 2019년 236.1일, 2020년 295.5일, 2021년 405.4일, 2022년 465.7일, 지난해 634.6일이었다. 올해 상반기는 640.1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역학조사 장기화로 노동자가 산재 승인을 기다리다 숨지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직업환경연구원 기준으로 역학조사 진행 중 사망자 수는 201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총 144명이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클린룸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역학조사 장기화는 지난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당시 '역학조사 장기화의 피해자'로 소개된 삼성디스플레이 연구노동자 최진경씨(사망 당시 49세)는 지난해 11월 끝내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유방암으로 숨졌다. 최씨는 생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무엇을 조사하느라 4년이 필요한 것인가. 인력 부족을 떠나 직무유기 같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새로운 유해요인과 희귀질환 등 역학조사가 필요한 질병이 느는 데 반해 인력은 부족한 것이 역학조사 장기화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집중처리기간 운영을 통한 장기 미처리 건 해소, 인력운영 개선 등을 역학조사 장기화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역학조사 기간 감소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들이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다 숨지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동부가 전향적 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저소득 산재 피해 노동자가 산재 승인이 나기 전까지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건강이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산재 피해자 4명 중 3명은 노동자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이 깊은 결과겠죠? 그나마 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다행인데, 질병이 깊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재해 당사자가 가구 생계를 책임지던 상황이라면 역학조사 기간은 고스란히 형벌의 시간이 됩니다.

이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2021년에도 삼성전자 디스플레이공장에서 7년간 일하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30대 A씨,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생산 현장에서 4년 동안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30대 박모씨가 산재 인정 결과를 기다리다가 사망했습니다. 삼성반도체·삼성전자·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에서 55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2012년 경향신문 기사에도 "그러나 죽음은 이들이 산재로 인정받는 속도보다 더 빨리 노동자들을 덮치고 있다"는 문장이 있어요.

문제를 개선하자는 제언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산재 인정 기준을 완화하자, 저소득 산재 피해자가 역학조사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산재 보험금 일부를 미리 지급받을 수 있게 하자, 역학조사 기간을 법으로 정하고 이를 넘기면 정부가 보험금을 선지급하자, 특정 조건만 충족하면 산재를 인정하는 '추정의 원칙'을 확대 적용하자….

특히 2017년 대법원은 삼성전자 노동자 이윤정씨 사망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노동자의 질병과 작업 환경 간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어렵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고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어요. 또 산재보상보험은 '공적 보험'인 만큼 책임 소재를 따져서 보상하기보다, 먼저 사회적 안전망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보상하고 그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것이 취지에 맞다고 판시했습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서 노동자가 직업병을 얻은 경우엔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시간이 필연적으로 소요되는데, 인과관계 규명을 과학의 틀 안에만 두지 않도록 좀더 문을 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2022년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반도체 공장에서 질병으로 인한 산재 사망이 전체 산재 사망의 70%로 나타났는데요. 반도체 공장에서는 사고사보다 질병사가 더 많다는 이 사회적 경험칙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유해원인, 희귀질환 때문에 역학조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는 근로복지공단의 설명은 참 아쉽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별안간 '산재 카르텔'을 지목하며 떠들썩한 감사를 벌였던 정부의 모습은 매우 놀랍고요.

정부는 '산재 카르텔'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며 특정감사를 벌였습니다. 마치 '산재 노동자=나이롱 환자'인 것처럼 메시지를 냈지만, 보수언론 등에 산재 보험금을 부정하게 탄 '나이롱 환자'로 보도됐던 이들이 부정수급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등 허깨비 때리기였던 것으로 나타났어요. 정부가 실체 없는 카르텔을 때려잡겠다고 나선 이후 불이익을 겪었다고 응답한 산재 노동자 비율이 36%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산재 카르텔' 운운은 산재 인정이 절실한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은데도, 관련 논의들을 모두 멈춰세웠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고약합니다. 그러는 사이 산재 인정을 기다리다가 생계 곤란을 겪거나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은 계속 늘고 있고, 2017년 178.4일이던 역학조사 평균 소요일수는 2023년 634.6일이 됐습니다.

634.6일. 1년 9개월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통째로 저당잡히고 경제적 자유가 박탈되는 '징역 1년 9개월'일 수 있습니다.

'삼성 백혈병 투쟁'의 상징이었던 황유미씨 부모님의 인터뷰 기사를 함께 소개하며 오늘자 레터를 맺습니다.

1.

산재 역학조사에 걸리는 시간이 2017년 평균 178.4일에서 2023년 634.6일까지 급증했다.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들이 산재 인정을 기다리다가 죽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 산재 피해자 4명 중 3명은 노동자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 역학조사 기간이 길어지면 노동자 생계가 곤란해지고 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없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3.

산재 인정에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대신 정부는 '산재 카르텔'이 있다며 대대적 감사를 벌였지만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 '당하는' 상사?

"팀장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아 미칠 지경"이란 말을 부하 직원에게 들었다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요? 관계에서의 '우위성'이 핵심입니다.

50년 뒤엔 '절반이 노인'

통계청이 새 인구전망을 발표했습니다. 2024년 현재 고령인구 비율은 19.2%인데, 현재 추세대로라면 2072년에는 무려 47.7%까지 오를 거라고 합니다.

'음주운전 추적' 유튜버 때문?

한 30대 운전자가 음주운전 추적 방송 유튜버를 피해 달아나다가 화물차를 들이받고 사망했습니다. 유튜버의 '사적 제재' 행위와 사고의 연관성이 수사 대상입니다.

인사말로 찾는 고혈압

스마트폰에 "안녕하세요"란 말만 들려줘도 고혈압 여부를 알 수 있는 기술이 나왔습니다. 어떤 질병은 사람의 목소리를 미세하게 변화시킨다고 하네요.

📬 제 어머니는 봉제공장 시다공, 아버지는 공사판 노가다 일꾼이십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두 분 덕에 저와 제 동생은 경제적 결핍 없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모두 모여 앉아 매번 오바로크를 치다 실수하는 미쓰리 이모, 박씨 아저씨가 오야지에게 왕창 깨진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그 단란함은 가정 내에서만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조사하는 부모님의 직업에는 항상 '아버지: 자영업, 어머니: 가정주부'가 적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들고 온 유인물을 한참 들여보던 어머니가 적어주셨던 것이 쭉 이어진 거죠. 어린 저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겠지만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직업이 부끄럽다기보다는, 적어 내면 괜히 설명할 일이 생긴다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폼을 적고 있는 순간에도 제 부모님의 직업은 표준어가 아니기에 빨간 줄이 그어집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을 내며 지극히 '표준적'인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데도 말이에요. 새로운 관점의 글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근한 가족들과 함께 읽어봐야겠어요. p.s. 아래 닉네임은 구독 시 이름과는 다릅니다만, 금 광산에서 광맥을 발견하면 노터치라고 말하던 것이 노다지로 굳혀졌다는 썰이 있죠? 부모님 덕분에 제 언어의 영역은 더 다양한 삶이 녹아든 노다지가 되었습니다. (노다지님)

📬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와닿을 예시를 들기 위해 국어학자님께서 최대한 많은 '노가다' 용어를 한 문장에 집어넣어 작성하신 거겠지만,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10년간 많은 현장 용어들이 한국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레인에서 물건을 양중하여 올리고 내릴 때 신호로 마게(올리다), 스라게(내리다)라고 했던 것을 이제는 올리고, 내리고라고 사용합니다. 또한 예시로 든 공종은 아주 일부의 것으로 시공에 소요되는 용어는 한자어, 영어 등 많이 있지만, 단지 그것들이 외부인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에 건설 용어라는 게 일제의 잔재로 아직도 어설픈 일본어 변형어들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현장에서는 일하는 많은 기술인과 소통하기 위해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겉으로 듣기에 난해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어도 모두 엔지니어로서의, 기술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산업에서 그들만의 용어가 있듯 건설업도 그런 용어가 있고, 이것 또한 시대에 흐름에 맞게 점차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 어, 기자님이 '기자 용어'에 대해 정색하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전 좀 의외인데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메일함을 열면 주기적으로 꼭 날아오는 메일이 하나씩 있거든요. 소위 '우리말 바로 쓰기'를 지적하시는 분들이나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정색하고 보내는 메일 말입니다. 저는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들을 존중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오늘 소개해 주신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업계의 밥벌이로 쓰이는 용어들을 너무 쉽게들 생각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저는 사람이 사고하는 한 언어는 무한정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는 교류를 통해 확장하고,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면서 사고체계를 이해하죠. 자연스레 외래어라는 게 쓰일 수밖에 없고, 신조어가 탄생하며 더 넓게 확장하는 것 아닐까요. 게다가 오늘 레터를 읽고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것이 순우리말(혹은 순화어)이다', '순우리말이 옳은 언어 사용이다'라고 제한하는 것은 일견 전체주의의 한 징조로도 보이는 듯해 거슬리는 느낌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네요. 과연 그렇게 언어의 상상력을 제한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익명의 독자님)

📬 직업군별 사용하는 언어를 단순히 일본의 잔재라고 생각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언어가 유지될 때 산업은 고립되고 새로운 진입자에게 꽤 커다란 장벽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만의 카르텔을 파괴하고 싶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ㅎㅎ님)

📝 지난 점선면Lite <💬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에서는 '노가다'처럼 외래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말에 대해 다뤘습니다. 여러 독자님께서 이런 말에 얽힌 경험과 생각을 보내주셨어요. 진짜 삶, 진짜 현장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더 많은 독자님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종업계 종사 중인 익명의 독자님, 그 메일은 저도 여러번 받아본 적 있습니다. 그중 한 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국민의힘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란 부분을 두고 '싱크탱크'를 '두뇌기관'이라고 바꿔쓰라고 권고하는 내용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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