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영조 프로랭스 대표 "번역회사가 방산에 뛰어든 이유는…"

2024-10-31

[비즈한국] 최근 구글, 챗GPT 등 생성형 AI 기반의 맞춤형 통·번역을 활용하는 곳들이 늘어나면서 ‘번역 시장’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번역 시장 규모가 줄어들면서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내 번역 회사들은 다양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방산 시장에 진출하는 ‘프로랭스’도 그 중 하나다.

프로랭스는 챗GPT 등 AI의 거센 도전에도 방산 분야를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최근 투자를 진행해왔다. 방산 분야는 기밀자료가 대부분이라 AI를 사용해 번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군사·방산 용어는 대부분 보안자료라 오픈 소스가 제한적이다. AI가 학습하기 어려운 구조다. 군에서 오랜 경험을 갖춘 전문 번역가들이 AI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영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비즈한국은 30일 권영조 프로랭스 대표를 만나 프로랭스가 방산 분야로 진출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랭스는 1988년 설립된 1세대 번역 회사로 36년 동안 ‘언어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드는 기업’을 표방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정규직 50명으로 ​통·번역 분야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적 자원을 갖췄다. 프로랭스는 국제번역표준 ISO 17100 인증,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서 ISO 9001 등을 획득했다. 최근에는 국내외 방산기업 다수와 프로젝트를 협업하고 있다.

특히 1995년 진행된 불곰 사업(러시아 무기 기술 이전) 낙찰업체로 선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국방 번역 업무를 시작했다. 방사청 공개입찰로 진행된 절충교역지침 번역, 장보고함 번역 사업 등을 수주 받아서 진행한 이후 해군 군수사, 공군 군수사들과 수년간 교범 번역 업무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원사로 최근 KADEX 2024 방산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권 대표는 “군 입찰이 프로젝트 계약 금액은 높으나 사실 최저가 입찰이라 수익을 보긴 어렵지만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고객사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2023년 취임한 이후 레드오션인 번역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고민한 결과 방산 시장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AI 번역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번역회사로선 방산 번역이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방산 번역은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폐쇄적인 환경이 필수다. AI 번역을 활용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챗GPT, 구글 등을 사용하면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AI도 학습을 통해 발전하는데 군사·방산 용어는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AI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방산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면서 방산 번역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수많은 양의 방산 관련 작업을 번역해야 사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보통 수출 국가에서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 공고가 나오면 국내 방산 업체는 RFP 분석을 위해 수일 내로 빠르게 ​번역이 ​필요하다. 이어 일정 내 RFP 요구사항에 맞춰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고, 순차적으로 제안서 ‘번역’이 따라붙어야 한다. 수주에 결정을 미칠 부가적인 서류(절충교역 부문, 계약 일반조건, 계약특수조건 등) 번역도 중요한 요소다. 이 과정에서 상대국가가 ​번역 공증도 ​요구할 수 있다. 방산 계약이 확정되면 수출 국가에 제공할 납기일까지 장비 사용자, 부대정비, 야전정비, 보급 교범 등등 매우 큰 단위의 교범 매뉴얼 번역도 필요하다. 부가적으로 핸드북, 지침서, 현지에서 사용할 교육자료 등 다양한 자료도 번역해야 한다. 

방산 분야는 정확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인 분야로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랭스는 방산 분야 진출을 위해 우선 보안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방산 프로젝트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자체 서버실을 보유하고 있다. 방산 전담 직원, 전산담당자, 군 전문 번역사도 추가 고용했다. 권 대표는 “번역 회사는 ​대부분 ​프리랜서를 고용하고 상주인력을 두지 않지만 방산 분야는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메일로 번역물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희는 방산용 컴퓨터와 방첩사의 신원조사를 거친 인력을 따로 고용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문서중앙화’ 시스템도 구축했다. 정보유출방지 보안 솔루션인 DLP와 함께 도입한 문서중앙화 시스템을 활용하면 중앙서버에 데이터를 강제 저장하기 때문에 직원 PC에 파일을 저장할 수 없다. 작업자는 권한이 부여된 파일에만 접근 가능하며 파일의 생성부터 수정, 삭제, 납품까지 모든 기록을 관리할 수 있다. 아울러 국군 방첩사령부의 보안측정 결과 94점으로 우수 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권 대표는 “사실 번역회사는 협력업체라서 방첩사 보안측정이 필수는 아니다. 다만 저희 고객사들을 위해 신청했다.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아 고객사에 크게 신뢰를 받고 있다. 향후 고객 유치를 할 경우 큰 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산 수출국이 점차 늘어나면서 필요한 언어들이 많아진 것과 ‘비용 문제’는 고민이다. 권 대표는 “제일 좋은 것은 수출 국가에 직원을 직접 파견해서 일하는 것이다. 문서중앙화 시스템을 활용하면 보안도 문제없이 작업할 수 있다. 다만 방산번역 분야는 보안 투자도 많고 일반 번역보다 매우 힘든 데 비해 단가가 턱없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보안을 제대로 지키면서 번역하는 회사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권 대표는 방산 번역 보안과 관련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핵심 기술들이 유출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만큼 무기 수출에도 보안이 중요하다. 단순 경쟁력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안이 확인된 곳에만 업무를 맡겨야 한다. 다만 전체 프로젝트에서 번역 비용이 너무 낮아 보안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국가 수출을 더욱 원활하기 위해 보안과 관련한 지원이 절실하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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