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어제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부인이 수사기관에 피의자로 공개 출석하는 헌정사 초유의 장면을 지켜본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정계에서 ‘V0’(VIP 0)라고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였지만 어제는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이동했고, 걸음걸이는 다소 불안했다. 취재진 포토라인에선 “국민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특검 조사를 앞두고 최대한 몸을 낮춘 말인데, 비상계엄을 옹호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던 윤 전 대통령이 떠올라 뒷맛이 씁쓸하다.
외신도 이날 일제히 김씨의 발언을 전했는데, 로이터는 “한국에선 전직 대통령 등 고위 인사들이 범죄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사례가 많고 종종 (김씨와) 유사한 형태로 유감 표명을 한다. 이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씨는 앞서 남편이 지난 4월 물러날 때까지 2년11개월 남짓한 재임 기간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으나 제대로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야권에서도 “보수 정부를 지지했던 국민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일을 벌였는지…”(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 등 비판이 쏟아졌다.
특검팀은 이날 김씨를 상대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를 둘러싼 국민의힘 총선 공천 개입, 건진법사 청탁 등의 의혹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이치모터스를 빼고는 모두 윤석열정부 때 불거진 국정 사유화 의혹들로, 대통령인 남편과 당시 여당의 비호 덕에 제대로 된 수사 한 번 받지 않았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김씨가 이런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특검팀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23분∼오후 5시46분 진행된 조사에서 애초 약속한 대로 진술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았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16개에 달하는 김씨 혐의를 확인하는 데는 앞으로도 여러 차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김씨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자신의 허위 이력 논란이 확산하자 그는 2021년 12월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이 약속만 지켰어도 어제와 같은 참담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