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봄입니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지나 호로록 봄이 왔습니다. 겨우내 긴장하고 움추렸던 몸을 활짝 펴고 꽃구경을 하며 봄을 만끽하고 싶어집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주말, ‘이런 OTT를 들여다 보라’고 권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봄날을 즐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영화를 골라봤습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 <나의 산티아고>입니다. 웨이브(Wavve)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은 하페 케르켈링. 36세. 독일의 인기 코미디언인 그는 돌연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많은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동안 바삐 사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갑작스럽게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그에게 병원에서는 ‘3개월 절대 휴식’을 처방합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지내던 그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끝장날 것 같다”면서 결심합니다. 프랑스 남부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무리되는 약 800km 길을 완주하겠다고 나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아 이곳에 오지만 난 먼저 질문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멋진 독백까지 곁들입니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소파 죽돌이가 순례길에 오르다니”라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는 법이다. 처맞기 전까지는.” 길을 나선 지 얼마되지 않아 여기저기 물집이 잡힌 발을 비롯해 온몸이 성하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알은체를 하는 통에 때때로 얼굴을 숨기기도 해야 합니다. 순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동숙박시설인 알베르게는 특히 고역입니다. 먼 길을 나서겠다고 큰 마음을 먹었지만 이전까지의 자신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던 겁니다. 그는 온갖 사람들이 부대끼는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에서 잠을 자고,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도 합니다. 왜 머나먼 길을 걷기로 했는지 그 질문을 잠시 잊었던 그는 그러나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길 위를 걷고 생각하고 또 하루를 글로 정리하면서 서서히 적응해 갑니다. 길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한스 페터(본명)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합니다. 혼자 걷는 길이지만 함께 걷기도 하는 일행들도 깨달음과 통찰을 제시합니다.

2015년 만들어진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주인공이 실제로 쓴 일기를 책으로 엮어낸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가 원작인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이 책은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로 제목을 바꿔 신판을 발간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산티아고 길’의 명성에 기댄 것이겠지요.
영화는 주인공이 걸어가듯 길을 따라 쭉 흘러갑니다. 이따금씩 피식거리게 하고 또 ‘아하’ 하는 깨달음도 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보는 이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킥’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이 산티아고 길의 멋진 풍광은 온전히 잘 담겨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 ‘버킷 리스트’인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영화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그 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좋은 영화입니다. 그런 한편 “피곤해 죽겠는데 행군 같은 걷기까지 굳이 해야 되겠냐”라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합니다. 내가 꼭 요리를 먹지 않더라도 ‘먹방’ 콘텐츠를 보면서 즐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요. 하루하루 일상은 이렇게 시시하고 지겹게 반복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멋진 풍경을 한걸음 한걸음 지나가며 새로운 길을 밟습니다. 어느 정도 대리만족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리가 불편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같은 이유로 관람을 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가 최근에 서비스가 종료된 영화 <와일드>도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여성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의 미국 서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완주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책이 원작인 영화입니다. 삶이 힘들어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을 때 볼 만한 영화입니다.
이런 ‘도보 로드무비’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2시간 안팎의 영화는 시간상의 제약 때문인지 주인공의 절박함과 행군의 고통이 그렇게까지 깊이 와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분께는 영화의 원작이 된 책을 추천합니다. 책은 저자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잘 반영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화만큼 외부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러니 책에서 아쉬운 점은 영화로,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책으로 보완이 가능한 셈입니다.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실제 걷기로까지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삼합’이 완성될 겁니다. 힘들게 만난 봄, 만끽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