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관저 앞 탄핵 찬반집회 불편 심화
일부 시위대 도넘은 과격행동 눈살
“보행자 붙잡아 지지여부 묻고 위협”
곳곳 쓰레기 투기·노상방뇨하기도
한남대로 통제로 교통 혼잡도 극심
“15분 걸리던 퇴근시간 40분 걸려”
서울시, 도로 점거 단체 고발 검토
7일 대통령 관저가 위치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는 전날까지 3박4일간 이어진 집회의 흔적이 역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전후로 한남동 일대에 대규모 찬반 집회가 열리면서 조용했던 주거지가 순식간에 두 진영의 세 대결장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낸 화환은 거리에 나뒹굴었고, 보행도와 차도에는 경찰의 접이식 폴리스라인이 겹겹이 세워져 있었다. 경찰 버스로 만든 거대한 차벽은 이날도 자리를 지킨 채 평온했던 동네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공수처의 체포영장이 집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탄핵 찬반집회는 주로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렸다. 하지만 최근 연이은 대규모 집회가 한남동에서 열리자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한남동 일대는 광화문이나 여의대로에 비해 보행로나 차도의 폭이 좁은 데다 남산터널에서 한남대교로 이어지는 인근 도로는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 경찰버스가 양쪽 차선에 차벽을 세우고, 집회가 차도를 점거해 열리면서 일대 주민들은 소음과 정체에 따른 불편을 겪고 있다.
한남동 주민 정모(38)씨는 “시위 소리에 두통이 생겼을 정도”라며 “경찰서에 신고해도 바뀌는 게 없다. 적어도 밤에는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도 “노랫소리와 마이크에 대고 지르는 고성에 방이 울린다”며 “주민들도 일이나 학업이 있을 텐데 일상에 지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40대 김모씨도 “조용한 동네에 인파가 몰리고 욕설이 난무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남동은 ‘나인원 한남’ 등 저층의 고급 아파트 단지와 골목 사이의 맛집들, 유명 의류 브랜드 상점 등이 몰린 ‘힙’한 동네로 여겨진다. 넷플릭스 인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안성재 셰프가 지난해까지 운영한 ‘모수’도 인근이다. 이에 평소엔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던 곳이었으나 집회가 길어지면서 “전쟁터 같다”는 말이 나오는 장소가 됐다. 근처를 거닐면 ‘국개의원 불체포특권 대통령도 있다’, ‘내란수괴 더 이상 못 참겠다’ 등이 쓰인 현수막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모(34)씨는 “주위에서 요즘 한남동이 난장판이라고 한다”며 “체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진 안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한다. 한남동 주민 온라인 커뮤니티나 오픈 채팅방에서는 화장실 찾으려고 주택가와 상점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흡연, 쓰레기 문제로 힘들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한 주민은 “집 가는 사람들한테 소리 지르고, 차가 들어갈 수 있게 비켜 달라고 하면 욕하면서 내리라고 한다”고 했고, 다른 주민도 “쓰레기 무단투기는 기본이고 노상방뇨도 종종 보인다”며 “보행자 붙잡고 지지 여부 묻고 위협하기까지 한다”고 토로했다. 관저 주변에 사는 한 주민은 “시위대가 이 영역을 수사한다면서 유튜브 구독 내역을 묻거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면서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집회 장소 인근 상점에는 “화장실 없음. 한강진역 사용하세요”, “공공장소가 아닙니다” 등 시위대 출입을 금지하는 문구가 붙었다.
한 카페 직원은 “화장실 이용하려는 시위대에게 ‘고객만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하다가 실랑이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류가게를 운영하는 박수빈(30)씨는 “15분 걸리던 퇴근시간이 40분으로 늘었고, 골목마다 불법 주차 문제도 심각하다”며 “(시위가) 매출에도 영향을 끼쳐서 이 시국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평소 통행량이 많은 한남대로가 통제되면서 교통혼잡도 극심해졌다. 체포 저지 집회는 국제루터교회와 북한남삼거리 구간에서, 체포 촉구 집회는 한남오거리에서 일신빌딩 구간에서 열리고 있는데 집회가 열릴 때마다 적게는 3개 차선, 많게는 전 차선이 통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버스 등 대중교통도 우회해 출퇴근길 불편이 커졌다는 호소도 많아졌다. 이모씨는 “도로가 통제돼 택시는 안 잡히고, 버스는 돌아서 간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도 오후 2시 예정된 체포 찬반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참가자들이 한남동 관저 근처로 속속 모였다. 태극기를 든 한 시민이 체포 손팻말을 든 시민에게 “죽여버릴 ××”라고 욕하는 등 상대편 시위대와 충돌하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민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는 관련 단체를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전날 단속 주체인 용산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당초 신고된 범위를 벗어나는 철야 시위나 도로 전체 점거 등 행위에 대해 집회 시간 준수 등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시는 교통방해 행위가 지속될 경우 관련 단체를 경찰 등에 고발할 방침이다. 시내버스 우회 운행, 지하철 탄력적 무정차 통과 등의 조치 등도 강구하겠다고 했다.
이정한·장한서·김주영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