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 한모(37)씨는 지난 3일 대통령 관저 인근을 지나다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한 중년 남성에게 붙잡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관저 앞까지 왔던 날이었다. 한씨는 “남성이 느닷없이 ‘이재명 XXX’라고 욕을 해보라고 강요했다”며 “무서워서 답도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지연되면서 관저 인근 한남동 주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남동은 주택과 식당, 편집숍 등이 골목 구석구석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된 뒤부터 탄핵 찬반 시위대가 몰려들면서 소음과 교통 체증,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차 체포영장 집행 기간이 만료된 7일 오전엔 집회가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길 곳곳엔 전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밤샘 시위대가 남긴 은박 담요부터 플래카드, 페트병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은 도로변 투명 방음벽에 붙은 집회 구호 피켓을 떼느라 바빴다. 관저 인근 자영업자 김모(71)씨는 “쓰레기뿐 아니라 노상 방뇨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 상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한남동 일대 카페와 식당 문에는 ‘화장실 공사 중’, ‘화장실 무단 사용 금지’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한 카페 사장 백모(44)씨는 “무단으로 화장실을 쓰는 사람이 하루에 100명은 된다”며 “어느 날엔 ‘애국하는데 화장실 못 쓰게 하면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카페 사장 김모(50)씨도 “사람 많으면 매상 오르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결코 아니다. 단골 발길도 끊긴 데다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집회 소음으로 밤잠을 설친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24시간 노래를 틀고 농성 형태로 시위를 하는 바람에 잠을 거의 못 잤다”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한남동에 이사 왔는데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말했다. 한남동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 김수돈씨는 “아파트 고층에 사는 주민일수록 집회 소음이 크게 들린다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관저 앞 집회가 시작된 이후 교통 체증도 심해졌다. 유모씨는 지난 6일 용산구청 홈페이지에 ‘시위 때문에 출퇴근이 고통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유씨는 “남산 1호터널~순천향대 병원~양재까지 출퇴근하는데 관저 앞에서만 한 시간이 걸린다”며 “지난주 금요일에는 퇴근하는데 시위대 때문에 버스에서 강제로 하차당했다”고 적었다. 한남동에 45년째 사는 최성섭(71)씨는 “도로를 통제해 버스가 안 다녀서 며느리는 압구정까지 걸어서 출근하고 손녀도 학원을 제대로 못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남파출소는 밀려드는 신고에 다른 업무는 거의 마비 상태다. 지난 4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한남파출소 112 신고만 490건에 달했다고 한다. 주로 소음 관련 민원이었다. 한 경찰은 “민원이 빗발쳐서 전화기마다 경찰이 다 붙어 있었다”며 “주민 민원뿐 아니라 집회 참가자끼리 쌍방 폭행으로 입건된 사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 앞도 비슷한 상황이다. 6일 서부지법 앞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가 보낸 근조 화환이 10개가 쓰러진 채 방치돼 있었다. 서부지법 직원은 “주인 동의 없이 화환을 치우면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어 구청에 민원만 제기해둔 상태”라고 했다. 이날 한 중년 남성은 서부지법 담벼락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며 확성기로 소리치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서울시는 관저 주변 불법적인 도로 점거가 지속되면 관련 단체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이날 예고했다. 서울시는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집회 신고 범위를 벗어난 도로 점거나 철야 시위 등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