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금 후 주방 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자가 세 남자가 앉아 있는 식탁 쪽으로 걸어왔다. 여자로서 큰 키는 아니었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다. 엉덩이가 꽉 조이는 흰바지를 말쑥하게 다려 입고, 화려한 색깔의 블라우스를 걸쳤다. 얼굴은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을 주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눈이 특히 해맑았다. 머리는 약간 짧게 생머리 비슷하게 단장을 하였다. 그녀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사뿐사뿐 걸어왔다. 세 남자는 눈앞에 나타난 낙안미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놀란 듯 쳐다보기만 했다.
미스 K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은쟁반에 옥 굴러가는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녀는 식탁 옆에 서서 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걸었다.
“교수님들이세요?”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보면 알죠. 교수님은 척 보면 느낌이 와요. 그리고 저희 식당에는 S대 교수님들이 많이 오시죠.”
“어디 가서 거짓말은 못 하겠네. 언제 개업하셨어요?”
“한 3주일 되죠. 그동안에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주인장이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사실인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누가 이 여자를 40대라고 볼까? K 교수의 무딘 눈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미스 K가 젊게 보이는 것은 화장 때문만은 분명 아니었다. 반소매 아래로 드러난 두 팔의 피부는 탄력 있어 보였고, 얼굴도 매우 젊어 보였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나이는 못 속인다고 양쪽 눈가에는 피부가 팽팽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잔주름은 없었다. 전체적인 인상이 멀리서 보면 20대로 오인하기에 십상이었다.
“미스 코리아 먹었다는데 사실이에요?”
ㄱ 교수가 다소 경박하게 물었다.
“맞아요.”
그녀는 당당히 인정하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 머리 자르러 친구하고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 원장님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친구가 같이 가 보자고 꼬시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어서 나갔는데 그만 사고를 친 거죠. 그런데 미스 서울에 뽑히자 ‘이화여대 대학원생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왔다’라고 바로 신문에 나온 거에요.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들의 연예활동을 금지했어요. 수영복 콘테스트가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금기 사항이었죠. 학교에서 퇴학시키기 전에 제가 자퇴하고서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한 거죠.“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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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교수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있나요? 비법 좀 알려 주세요. 우리 애인에게도 전해주게요.”
“노 코멘트.”
미스 K의 영어 발음에서 버터 냄새가 묻어났다.
미국에서 6년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K 교수가 물었다.
“미국에서도 사신 모양이죠?”
“예, 약 4년 살았어요.”
“어쩐지. 영어가 본토 발음이네요.”
약간은 엉뚱한 데가 있는 ㄱ 교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스 코리아 하셨다니까 물어봅시다. 어떻게 하면 미스 코리아에 당선될 수가 있어요? 달리 묻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우리 학과 1학년 학생이 미스 코리아에 출전했는데, 예선은 통과했대요. 그 학생을 사장님에게 보낼까요? 선배가 후배 지도하는 셈 치고, 한 수 가르쳐 주실래요?”
“그러세요.”
“내가 보기에 그 학생이 타고난 미인 같은데.... 미인은 유전인가요?”
“유전도 중요하고 또 노력도 있어야지요.”
“그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어쨌든 내가 그 학생더러 한번 찾아가라고 전할게요. 그런데 사장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아, 제가 명함을 안 드렸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