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
2016년 5월 16일 한강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후 남긴 말이다. 수상 소감이 전해지자 국내외에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오버랩되는 중의적인 소감”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한국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장에서 제창하는 문제까지도 논란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의 피해자들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린 작품이다.
한강은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유사한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아버지 한승원(85) 작가의 입을 빌려 “전쟁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라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쁨을 표하지 않는 것은 전쟁과 죽음 때문”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한강 측이 축하 행사나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섰다. 한강의 이름을 단 문학관이나 기념시설을 지어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겠다는 취지였다.
노벨문학관은 한승원이 사는 전남 장흥군에서 가장 먼저 제안했다. 장흥군은 “세계 유일의 한승원·한강 부녀작가의 기념관을 짓겠다”고 했다. 또 2008년 전국 최초로 선정된 420억원 규모의 문학관광기행특구 조성의 일환으로 한승원 생가를 매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강이 태어난 광주광역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광주시 측은 지난 14일 장흥군 한승원의 집필실을 찾아가 기념사업을 논의했다. 이에 한승원은 “딸은 모든 건물 등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거절했다.
대신 한승원은 광주시에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는 광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또 딸이 태어난 광주 북구 중흥동에 『소년이 온다』 북카페 등을 조성해 시낭송과 독서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일주일 뒤 5·18 사적지인 전일빌딩245에 ‘소년이 온다 미니 북카페’를 설치했다. 또 한강이 어릴 적 살던 북구 중흥동 집터를 매입하기 위해 협의에 들어갔다. 광주시는 “단독주택이던 한강의 생가는 현재 상가로 바뀌어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광주시 안팎에선 “한강이 반대하는 문학관이나 집터 매입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기존 시설을 활용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아시아문화전당은 5·18 중심지인 옛 전남도청에 들어선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시설이다.
소설 『소년이 온다』 속 5·18 흔적이 남아있는 옛 전남도청. 이곳에 5·18의 아픔을 넘어 민주주의와 문학·문화가 상생할 공간을 만든다면 한강도 납득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때야 비로소 그가 강조한 소년도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