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디지털 뻐꾸기여, 안녕

2025-03-09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탁란(托卵)이다. 대개 자기보다 몸이 작은 새를 택한다. 어미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둥지에 알을 낳으면 그 어미새는 이 알을 부화시켜 키운다.

알을 까고 새끼가 나오면 내막을 모르는 새는 자기 새끼인줄 알고 정성껏 키운다. 다른 새보다 몸집이 커진 뻐꾸기 새끼는 다른 아기새들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도 파렴치한 일인데 집주인 새끼까지 쫓아내니 고약한 일이다.

인간 세상에도 이런 뻐꾸기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만든 카톡방에 들어와서 자기 상품을 홍보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계속 올리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카톡방은 물이 흐려지고 한두명씩 떠난다. 뻐꾸기가 원래 주인새를 몰아내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기가 개설한 방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올리는 거야 관계없지만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개설한 카톡방에서 뻐꾸기의 탁란 같은 짓을 하면 안된다.

10여년째 이어오는 강사포럼이 있다. 100명의 강사가 참여해 한달에 한번씩 조찬강연 행사를 하고 있다. 당연히 카톡방이 있다. 여기에 매일 한두번 자기 유튜브 방송을 올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올리더니 몇개월이 지나니까 매일 올리고 심지어는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올리기까지 한다. 디지털 뻐꾸기가 나타난 것이다. 회원들이 탈방을 하기 시작하고, 어떤 회원은 회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 해결책을 짜보라고 항의까지 한다.

이 디지털 뻐꾸기에게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단체 설립 목적과 관련이 없는 내용을 매일 올리는 것을 금한다는 ‘카톡방 운영지침’을 만들어서 공지까지 했다. 그러나 무슨 배짱인지 계속 글을 올린다. 유튜브 편집증이 나타난 걸까?

나는 요즘 이 디지털 뻐꾸기를 퇴출시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했다. 새로 카톡방을 만들고 회원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공지했다. 새로운 방은 신청한 사람 중 방장이 초청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 디지털 뻐꾸기가 이사 올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뻐꾸기의 뻔뻔한 행동을 지켜보던 회원들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둥지를 옮기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한 나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었기 때문일까? 어려서 온 가족이 이사할 때 모습까지 떠올랐다. 큰 차에 이삿짐을 싣고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아련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네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자식들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려고 낯선 도시로 이사를 결심했을 것이다. 나는 전체 회원을 위해 단톡방을 이사하기로 결정했지만 왠지 마음이 아프다.

저 멀리서 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뻐꾹 뻐꾹’ 같기도 하고 ‘까똑 까똑’ 소리 같기도 하다. 회원 전체를 위한 일이니 어쩌겠는가. 독한 마음을 먹고 인사를 고한다. 안녕 디지털 뻐꾸기여. 안녕 안녕….

윤은기 한국협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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